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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1 올림픽이라는 유령
  2. 2008/08/05 세계의 굴뚝, 베이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
내가 본 세상/사회2008/08/21 11:05
 교과서를 통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알퐁소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시대적 배경은 1871년,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게 포로로 잡히는 굴욕적인 패배 이후 프랑스의 철광지대인 알자스-로렌 지역을 프로이센에 할양하는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근대 올림픽의 역사 역시 이 사건에서 시작된다.
 
  당시 7살의 어린 나이였던,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의 가슴 속에 프랑스의 패배는 깊숙이 각인되었고 이러한 패배가 국민의 마음 속에 있는 나약함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 쿠베르탱 남작은 훗날 체육교육의 보급에 힘을 쏟게 된다. 근대 올림픽은 체력은 곧 국력이자 자기계발의 수단이라는 쿠베르탱 남작의 신념이 지덕체(智德體)의 합일을 이상으로 삼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라는 소재를 접하고 가장 총체적인 형태로 실현된 것이다.
 
  요컨대 근대 올림픽은 제국주의 시대의 국민동원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쿠베르탱 남작에게 영감을 준 19세기 영국의 체육교육은 식민지 개척에 동원할 수 있는 강한 엘리트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성장소설은 복싱 등의 스포츠를 통한 자기계발과 남성으로서의 각성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시민은 곧 자신의 무기를 갖추고 있는, 폴리스가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전쟁터로 달려갈 수 있는 군인이었다.
 
  결국 근대 올림픽에서의 아마추어리즘의 강조는 전 국민을 언제든지 동원 가능한 강한 군인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지 흔히 생각하는 국민체육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19세기와 오늘날의 차이는 여성도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근대 올림픽의 출발이 군국주의적이라고 하여 현대 올림픽 역시 국민을 군인으로 개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간주하기는 힘들다. 오늘날의 올림픽은 자본과 세계화라는 변수가 끼어들어 근대 올림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월드컵과 대비되는 올림픽의 가장 큰 특징은 프로팀이 존재하는 인기 스포츠의 비중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여기서 올림픽에서만 볼 수 있는, 국가와 자본의 행복한 공존이 나타난다. 축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에서는 국제 경기가 열릴 때 프로팀 및 선수 개인의 이해관계와 국가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된다. 예컨대 호나우도와 같은 스타선수에게 자신이 소속된 프로팀에서 열심히 훈련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과 국가 대표팀의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여 모국이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는 것은 어느 한 가지를 택일해야 하는, 상호 배치되는 일이다. 선수의 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반면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은 자본과 국가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에게는 소속팀이 곧 국가이기에 팀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는다. 국가는 이들을 국가를 위한 대리전을 치르는 전사로 훈련시키고-아마 프로팀에서 한국 양궁 대표팀과 같은 훈련을 실시한다면 법정 소송까지 걸릴 것이다-자본은 이들의 스폰서를 자처하며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활용한다. 호나우도의 슛은 대부분의 경우 국가보다는 자본을 위한 것이지만, 김연아의 연기는 국가와 자본을 모두 만족시킨다.
 
  선수를 둘러싼 국가와 자본의 공모는 올림픽 행사 자체로도 이어진다. 올림픽이라는 국가주의적 제전은 국가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총력전이기 때문에 그만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스포츠 과학' 이라는 이름의 첨단 군사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가동하는 데에는 스포츠 용구 제작회사들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함에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게다가 공식후원업체 인증이라는 '독점권' 의 보장과 '올림픽 특수' 는 자본의 이윤을 위한 국가의 노골적인 러브콜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의 올림픽은 더 이상 지덕체가 합일된 이상적 인간(군인)의 육성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적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인류 보완계획보다는 차라리 로마인에게 제공되었던 '빵과 서커스' 에 가깝다. 그리고 '빵과 서커스' 의 생산은 대부분 초국적 자본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국가는 이들에게 독점적 이윤을 보장한다. 오늘날의 올림픽 행사 자체에서는 쿠베르탱 남작이 내걸었던, 다소 구시대적인 이념미마저도 찾아보기 힘들다. 평화의 제전이라는 기치를 내건 올림픽 개막식을 무색하게 하듯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전쟁이 발발하였고, 거장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스펙터클한 개막식은 올림포스의 신들 대신 국가와 자본이라는 근대의 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방불케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올림픽을 즐긴다.
 
  물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올림픽은 매혹적인 요소들이 많으며 그것들은 자본과 국가의 얼룩으로도 가려지지 않고 빛난다. 어떻게 포장이 되었든간에 선수 개개인은 자신과의 싸움에 임하는 것이며, 그러한 선수들의 노력과 성과를 진지하게 지켜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은 품위 있는 일이다. 박태환의 선전과 펠프스의 장애 극복은 국경을 초월하여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그렇기에 우리가 올림픽에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선수 개개인들이지 올림픽 그 자체가 아니다. 미국과 한국의 대결이라는 내셔널리즘의 틀이 없더라도 펠프스와 박태환은 개개인도 그렇고 그 둘의 대결 역시 모두 매력적이다.
 
  다행히도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올림픽 기간에 자행된 2MB의 폭거는 하나하나가 평소였다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한 일들이다- 정부와는 별개로 한국 시민들이 올림픽을 즐기는 태도는 괄목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외국 선수들의 선전에 대한 솔직한 감탄과 인정이야말로 진정한 스포츠맨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야 올림픽을 국가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아닌, 순수한 스포츠로서 즐기는 데에 가까이 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인해 개혁에 실패한 뒤 빵과 서커스로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던 로마 공화정의 몰락은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희생당하던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일으킨 혁명에 의하여 가속화되었다. 오늘날 중국이 주최하고 초국적 자본들이 공모하여 전 세계에 제공한 올림픽이라는 빵과 서커스의 뒤에는 어떠한 아픔과 증오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폭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라는 이름의, 올림픽이 강조하는 국민공동체 내부의 아픔과 상처 역시 마찬가지이다. 2MB 가 태극기를 거꾸로 흔들며 올림픽에 열광하고 있을 때, 기륭전자의 여성 노동자들은 단식 끝에 병원으로 싷려갔다. 기륭을 모르고 올림픽에 열광하는 한, 우리 모두는 2MB와 공범이다.  


프레시안 게재
Posted by 데학생
시사IN/국제 in2008/08/05 21:20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국제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상징적인 계기들로 작용할 것 같다. 이미 '세계의 굴뚝' 으로서 세계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확립한 중국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단순한 경제 강국을 넘어선, 패권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려고 시도할 것이며 그 조짐은 이미 다방면에서 나타다고 있다.

 물론 중국의 이러한 시도는 미국의 헤게모니에 비하면 초라한, 절반의 성공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홉스봄의 신간 <폭력의 시대> 에서 지적하다시피, 미국의 헤게모니는 그것이 소비에트에 비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 다른 강대국들의 양해에 의해 구축된 것이다. 그리고 구미의 선진국들은 이미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중국에 대해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세계는 미국과 중국 중 어느쪽의 악덕을 더 참을 수 있을까.

 하지만 유럽연합은 푸틴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서 중국을 한시적으로 어느정도의 패권국가로 인정해줄 것이다. 그리고 중국 패권의 한계는 거기까지이다. 세력균형을 맞추기 위한 물질적 추 이상을 넘어선, 아편전쟁 이전의 정신적 종주국까지 자처하는 것은 명약관화한 언감생심이다. 이미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담론이 '역사의 종말' 까지 선언한 현재 세계에서 중화주의가 전 세계인들의 가치기준이 될 가능성은 요원해보인다.

 이번주 시사 IN 에서 서술하고 있는 중국의 올림픽 준비 내용을 보고 있자면 중국 역시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들은 미국에 맞서 중화블록을 건설하는 헤게모니 투쟁보다는 자신들의 중화를 정복하였던 서구적 근대의 '힘' 만을 추구하기로 한 것 같다. 인권문제를 이유로 스필버그가 사퇴한 후 올림픽 개막식 연출을 담당한 장예모가 '황후화' 에서 보여주었던 것은 중화의 인문이 아닌, 서구의 시선으로 본 봉건적 동양 판타지의 스펙터클 뿐이었다.  이것은 상징적이다.

 장예모와 왕가위 감독의 영화 및 현대 중국 문학에서 나타나는, 서구화된 근대 상하이라는 대체적 공간에 대한 노스탤지어-최소한 엄격한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는 서구적인 것을 현재 속에서 드러내놓고 욕망할 수 없었으니-는 이제 국가가 주도하는 한편의 거대한 연극 속에서 그 가면을 벗는다. 서구화는 둘째 치더라도, 스터디움 건축을 위해 아무런 보상 없이 주민들을 철거시키는 그 무지막지함 속에 노골적인 힘에 대한 갈망이라는 중국 패권의 본질이 잘 나타나 있다.

 평소 함축된 고사성어로 외교 정책을 암시하던 중화적 인문의 세련된과 섬세함은 아편전쟁의 설욕을 향한 세력 과시의 일념에 압살되고 말았다. 유럽의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거대한 스케일의 건축물과 서구의 예술가들이 만든 대형 전시물 속에서는 '세계의 굴뚝' 만이 보일뿐 동아시아의 문화 공장을 담당했던 깊은 '중화' 는 찾아볼 수 가 없다. 이러한 스펙터클은 세계인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을 포섭할 수는 없다. 강대국이 되는 것과 선진국이 되는 것 사이에는 황하의 폭 만큼이나 넓은 간격이 존재한다.

 문제는 국가의 잘못된 방향설정을 바로잡아 주어야 할 중국의 지식인과 엘리트들 역시 강대국을 향한 정부의 국가주의 프로젝트에 복무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목록은 <쿵푸팬더> 의 눈색깔을 트집잡아 드림웍스에게 소송을 건 '예술가' 부터 중화제국을 찬양하는 '지식인' 까지 참 다양하다. 아마도 이들의 버라이어티 쇼는 아편전쟁 이후 서구에 굴복한 중화제국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강한' 중국이지 '깊은' 중화 문화는 아니다. 후자는 전자를 상상하고 과시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중국이 알리앙스 프랑세즈와 괴테 문화원에 맞서 공자를 내세우는 것은 유교에 대한 경의와 자부심보다는, '세계적인 것' 에 대한 집착이라는 면이 더 클 것이다. 공자는 우연히 그 기준에 부합했을 뿐이다. 성화봉송 당시 티벳 독립 반대를 외치며 발광하던 중국 유학생들의 모습은 유교적 예(禮)와는 거리가 먼, 벌거벗은 중국 패권의 본 모습이다.

 동북공정과 백두산 잠식을 일삼는 중국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동북아시아에 일본과 러시아라는 또 다른 강대국들이 있고 미국이라는 균형추가 존재했기에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저질렀던 만행들이 동아시아에서도 자행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누가 아는가? 중국과 미국이 21세기 버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혹시라도 모른다면 꼭 찾아보기 바란다. 이것이 제국의 실체다)이라도 맺을 수 있을지.

 중국은 위험하다. 미국과 같은 가식조차 존재하지 않는 노골적인 권력 그 자체이다(물론 이것이 네오콘의 중국 위협론과 궤를 같이 하여 중국을 공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중국과 외교적으로 많은 관련이 있는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야욕에 대한 대응을 분명히 마련하여야 한다. 한국 역시 북한을 내부식민지로 보는 제국주의적 관점을 버려야 함은 당연지사이지만(금강산 관광을 '시혜' 로 보는 2MB 의 오만함을 상기하자).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세계패권을 향한 상징으로 이용하려는 중국과 국내의 여론을 돌리기 위한 용도로 이용하려는 2MB의, 서로 의식하지 못하는 밀월 아닌 밀월은 우려스럽다. 인문을 던져버린 벌거벗은 국가주의자들의 무의식적 상동성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는 날부터, 우석훈이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우려하였던, 문화가 거세된 노골적인 힘들의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을 제어할 수는 없지만 한국을 인문국가로 만들 수는 있으니, 패권적 야욕에 대한 지혜롭고 세련된 대응을 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무더운 여름에 피서삼아 베이징 올림픽을 즐기는 것은 좋다. 올림픽을 본다는 것 자체가 국가주의적 술책에 놀아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2MB가 원하는 불도저 국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신문과 뉴스는 꼬박꼬박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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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