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투덜2009/06/17 00:58

지난 18일 문광부의 한예종 종합감사 결과 통보와 연이은 황지우 총장의 사퇴로 인해 외부에 널리 알려진 한예종 사태는 날이 갈수록 대립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는 상식과 몰상식, 예술과 야만, 이성과 추악한 욕망 사이의 대립이자 한국 문화계의 향후 진로를 결정지을 만한 중대한 갈림길이다. 유인촌 장관은 이미 국립미술관장 해임 사건, 국립오페라단 해체 사건에 대한 대응에서 보여주었다시피 ‘잃어버린 10년’ 지우기에 혈안이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한국의 문화 발전과 예술진흥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야욕과 강박관념에 의한 것인지는 명백하다.

황지우 총장의 사퇴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소위 ‘한예종 죽이기’ 시나리오는 위와 같은 유인촌 장관의 독특한 문화철학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예종에 대한 전 방위적 공격이 문광부뿐만 아니라 공식 정부조직이 아닌 뉴라이트 세력과의 철저한 공조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미래포럼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작년부터 이미 한예종에 대한 공격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준비해왔으며 문광부의 감사 결과에 맞추어 꽹과리를 열심히 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행동방식은 흡사 서북청년단이나 나치 돌격대와 같은 유사정부조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일사분란하며, 오히려 문광부가 이들이 짜놓은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돌격대와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문광부는 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정부 외의 조직이라고 해서, 뉴라이트를 표방한다고 해서 한예종에 대한 이들의 고언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고언’ 이 아닌 명백한 ‘망언’만을 일삼는다면, 그리고 권력의 비호에 힘입어 자신들의 몽상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규탄과 타도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평소 한예종에 대한 이들의 공격내용과 지난 15일에 명동 포스트 타워에서 있었던 문화미래포럼의 심포지엄에서 나왔던 말들을 종합해 본다면 결국 이들은 이미 높은 수준의 예술교육을 제공하고 성과를 내고 있는 한예종에 고언을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을 규탄한다.

첫째, 한예종 교수진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공격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언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자신들의 추측에 근거하여 한예종의 정치적 성향을 재단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닭이 우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좌파 교수’ 가 거슬린다면 지난 시국선언에 교수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 학교를 찾아내 그곳부터 공격해야 할 것이다. 더 생산적인 방안으로는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 프리다 칼로, 브레히트, 네루다 등을 예술사에서 지워버리는 ‘예술사 바로잡기 작업’ 에 착수하는 쪽을 추천한다. 미래의 콩고물을 기다려야 하는 한예종 공격보다는 학술진흥재단에서 당장 연구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는 방안을 선택하는 쪽이 아무래도 합리적이지 않은가?

둘째, 이론교육 및 통섭교육에 대한 공격은 문광부와 문화미래포럼의 구성원들의 머릿속이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비어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주장이다. 근대 이후 예술은 더 이상 자연의 모사가 아닌, 작가의 독창적인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사상과 주관이 없는 기술에서는 복제 이상의 ‘예술’ 이 나올 수 없다. 그리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아방가르드 없이 예술은 발전할 수 없다. 게다가 숭고한 예술의 차원이 아닌 세속의 비즈니스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이들의 무능은 명백히 드러난다.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에 의하면 현대 문화산업에서 예술품이 상품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미학이론과 담론이 필수적이다. 작품의 가격이 가장 높은 현대 작가 중 한 명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실기 기술 때문에 가격이 높은가? 포르말린 속에 담겨 있는 동물의 사체를 비싼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론과 담론이다. 한예종을 공격하는 세력의 주장을 따른다면 우선 문화미래포럼에 소속된 교수들부터 학과를 폐지하고 의대에 가서 포르말린과 메스를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공립 대학은 부실하고 민영화만이 살길이라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 없는 신앙에 가깝다. 모든 주장이 논파당한 후 고장난 라디오처럼 민영화의 주문만을 반복하여 외우는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 한예종에 대한 모든 부당한 간섭과 공격을 중단하고 새로운 사립 예술대학을 설립해야 한다. 민영화가 만병통치약이라면 이들이 모여 만든 신생 대학이 곧 비효율적인 한예종을 압도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위대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시장에 뛰어드는 일만 남았다. 번거롭게 이미 비효율적인 관료체제와 좌파 교수들에게 포섭되어 있는 한예종을 개혁하기 보다는 뜻이 맞는 ‘전문가’ 들이 모여 새로운 사립 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빅뉴스>에서 무료로 대학 홍보를 해주고 ‘실크로드 포럼’ 에서 학생들도 공급해줄 것이다. 한국 예술교육의 발전을 위해 문화미래포럼 교수들은 당장 사직서를 쓰고 사학재단부터 만들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결국 이들의 한예종 공격은 합리적인 이론적 근거를 결여한 채 무지에서 나온 아집 혹은 콩고물에 대한 추악한 탐욕에 근거한 것이다. 유인촌 장관의 빈곤한 예술관, 정치적 야욕과 뉴라이트 세력의 물질적 욕망 혹은 근거 없는 몽상이 만나 현실에 구현되었을 때 펼쳐질 한국 문화계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에 비해 이들이 문제삼는 한예종은 예술을 사랑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즐거운 배움의 터를 제공해주고 수많은 대외적 성과를 산출하는, 실력있고 아름다운 예술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대학생들과 연대하는 우리 진보신당 학생모임은 이 땅의 예술을 지키기 위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위대한 싸움에 동참할 것을 선언하는 바이다. 권력과 물질에 대한 추악한 욕망이, 척박한 땅에 이제 막 새싹을 틔운 순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나아갈 길을 정해야 한다. 예술이냐, 야만이냐. 우리는 함께 선언한다. 강풍은 꽃을 꺽을 수는 있지만 봄을 막을 수는 없다고. 이 길고 엄혹한 겨울 속에서 예술이라는 빛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은 모두가 함께 한발짝씩 나아갈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틀린 역사의 미로 끝에서, 한예종은 모두와 함께 다시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한 우리는 찬란한 도시로 입성할 것이다. - 아르튀르 랭보
(Et a l'aurore, armes d'une ardente patience, nous entrerons aux splendides villes)


 

2009년 6월 17일
진보신당 학생모임
club.cyworld.com/newprogress

Posted by 데학생
광대의 사회학2009/03/02 18:49

 최근 진보신당의 당헌 및 당규를 둘러싼 논의가 수면위로 부상하였다. 그동안 당내에서 일어났던 논쟁들은 고도의 추상성을 담보하는 이념적 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논쟁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현실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제도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집권을 목표로하는 공당으로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특정 정당이 아무리 좋은 이념을 가지고 있어도 이념을 현실에 반영시킬 좋은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미있는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정당이론가 사르토리의 지적대로 제도는 우선 작동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제도는 그 자체가 도덕성의 판단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재(制裁)와 보상(報償)으로 구성된 유인체계의 틀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도덕성 혹은 진정성을 검증하는 종교재판이 되기 쉽다. 아쉽게도 현재 당내에서 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사르토리가 말한 구체적인 제도의 작동기제 및 기대효과와 같은 현실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제도의 취지라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여성할당제이다. 3월 1일 당 대회에서 논의하게 될 당헌 및 당규 원안에 의하면 전체 선출직과 임명직 중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며 선출직의 할당은 일반명부와 분리된 여성명부에 대한 투표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제도가 여성의 정치참여라는 선한 동기와는 달리 왜곡된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위의 규정에 의거하여 치러진 최근 대의원 선거만 보더라도 제도의 문제점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가장 극적인 문제점을 들자면 명부 할당을 맞추기 위해 일반명부가 없이 여성과 장애인 대의원만을 선출해야 하는 일종의 게리맨더링까지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최근 필자와 권병덕, 허건 대의원이 함께 발의한 당헌 및 당규 개정안은 여성 할당 비율을 3명당 1명으로 조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통합단일명부에 의한 선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의무적으로 배정된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당원을 동원하는 폐단 (애초 취지와는 달리 여성의 정치‘참여’ 가 아니라 ‘복무’를 읍소하는 실정) 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조정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할당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 쏟아지는 규탄은 발의자들의 지적한 현실적 문제에 대한 교정수단을 제시하지 않으며 제도의 이념적 당위성만을 내세우고 있다.

 

여성의 정치참여를 당위로 내세워 현행 여성할당제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주장의 이면에는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직접통치를 의미하며 모든 ‘민주적 가치(양성평등, 경제적 평등 등)’ 들을 포함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강령적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인민의 직접통치를 강조하며 여성의 목소리는 여성 자신에 의해서만 대변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다수의 합의를 통해 정책으로 표현되는 정당의 목소리와 개개인이 말하는 감성적 체험담을 구분하지 못하는 낭만적 사고일 뿐이다. 그리고 여성만의 특수이익이 존재한다면 이는 여성 부문 창설 후 이에 대한 할당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전체적 할당을 통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부문으로 조직화된 여성은 오히려 지역과 부문별로 산개된 여성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고 단일한 목소리로 여성의 권익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인민이 피치(彼治)에 대해 동의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단순히 여성정치인의 수를 양성평등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다. 현재 한나라당의 당헌에는 지역 대의원 및 국회의원 지명 대의원의 50%를 여성으로 할당하게 되어 있으며 최고위원과 같은 고위직의 경우는 여성당선자가 한명도 없을 경우 여성 최다득표자에게 한 자리를 배당해주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게다가 현재 한나라당에는 박근혜, 나경원, 전여옥 과 같은 스타급 여성 정치인들이 다수 활약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한나라당이 여성친화적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여성의 수가 아니라 정당 내부의 여성친화적 분위기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기계적 할당이 아닌 선거과정에서의 철저한 검증과 여성친화적 개혁정책의 개발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강령적 이해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작동 가능한 제도적 절차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대표와 책임의 체제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전 영역에 걸친 여성할당은 다른 부문할당에 비해 과잉대표 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각 지역과 부문 내의 여성이 여성 스스로에 의해 대표되어야 한다면, 비정규직이나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대표 가능성 역시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어떠한 근거에서 성별만이 전 영역을 포괄하여 각자의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대표되어야 하는 근본모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가. 따라서 근본적으로 보자면, 여성할당은 부문으로 배정되어야 한다.

 

 또한 앞에서 지적하였다시피 여성할당제로 인해 생겨난 공간을 채울 소명의식 있는 여성 정치가 자체가 극도로 부족한 실정에서 전 영역에서 의무적으로 공간을 비워놓는다는 것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방해하는 비효율적인 행위이다. 이미 제도권에 안착한 기성정당과는 달리 가용가능한 자원이 매우 적은 신생정당에게 있어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은 정당의 집권가능성과 제도권 안착을 가로막는 중대한 질곡으로 작용한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단순히 당내 여성정치인의 수가 성평등지수와 연결된다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그 기회비용을 냉정하게 계산해 볼 수 있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전 영역에 대한 여성할당제는 성별을 막론하고 당직을 희망하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여력이 된 이후에야, 그리고 당이 생존의 단계를 넘어 가치를 둘러싼 담론에 공식 행위자로서 들어갈 정도의 위상을 지닌 후에야 검토해 볼 문제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의 저서 <담대한 희망>에서 소수자 우대법(affirmative action)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소수자 우대법이 역사적 과정이 있으며 자원이 풍족한 호황기에는 다수의 관용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자원 자체가 부족한 불황기에는 오히려 다수의 증오감을 유발하기 때문에 소수자 우대법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서 소수자의 불이익과 다수의 불안 모두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중재 지점을 찾는 오바마의 문제의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정치인의 희소성이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망자 자체의 희소성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컨대 차기 여성 정치인을 양성하는 교육과정의 수립과 같은 대안도 가능할 것이다.

 

 이미 많은 문제를 보이고 있는 여성할당제를 고수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방식의 당내 여성권익 향상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실제적인 여성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여성할당제가 도덕적 명분 외에 구체적인 실익을 낳는다고 보기는 힘들다. 단순히 당내 여성정치인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넘어 여성이 실제적 권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에 대한 과도한 도덕주의적, 이데올로기적 접근에서 벗어나 문제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을 통해 현실적인 사고를 제약한다. 사안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끊임없이 도덕적 열정과 규탄을 수반하며 이는 정치과정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가 들어설 기반을 해체하며 정치를 검증 불가능한 진정성의 경쟁장으로 만드는 나쁜 효과를 낳는다.

 

 여성할당제에 대한 기존의 논의 상당부분이 비이성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은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서 기인한다. 기존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동원된 여성주의 이데올로기는 억압과 투쟁이라는 세계관을 통해, 여성에게 배당되어야 할 몫의 양에 대한 합리적 계산 제안마저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며 이는 매우 감정적인 반발로 표출된다. 하지만 정당은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집단이며 정당의 운영은 일차적으로 집권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이 집권 외의 사안-예컨대 당내 ‘실질적’ 민주주의의 보장-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것은 자족적 공동체 이상의, 사회 내에서 변화를 추동하는 의미 있는 세력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통치의 내용이지 통치의 주체가 아니다.

Posted by 데학생
내가 본 세상/정치2009/01/18 20:20

 현재 당의 대의원 선출 방식과 관련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과정에 대해 폭넓은 당원 전반의 참여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정종권 위원장님과 회사원님의 글들을 보았고 여러 당원 분들의 글을 보았는데, 추첨제라는 낯선 제도가 제안된 것과 일각에서 일인다표제를 주장하는 논거의 방식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스러운 경향이 엿보여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우선 일인다표제에 대해서는 기술적인 판단을 유보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말하겠습니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투표보다 추첨을 더 '민주적' 인 것으로 간주하였지만 그것은 고대 아테네 시민사회가 고도로 동질적인 집단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추첨제와 일인다표제를 주장하는 분들의 취지는 결국 '평당원' 으로 대변되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방법들이 '평당원' 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의문입니다. 직업 등의 모든 요소가 분화된 현대사회에서 추첨이라는 방식으로 다양한 당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의제화 시킬 가능성은 확률에 기대는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당은 일종의 작은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일반의지' 를 직접 접촉하게 하려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둔 선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평당원의 참여를 주장하시는 분들의 상당수는 평당원을 동일한 질을 지닌 '일반의지' 로 상정하고 평당원의 선출여부를 강조하시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시민사회와 국가 사이에는 그 폭주를 막기 위해 직업 정치인으로 대변되는 매개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사회는 노련한 국가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추첨에 의한 대의원 선출은 그들의 대표성과 책임성 여부를 떠나 역설적으로 '평당원' 의 이익을 배반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좋은 정치란 인민 스스로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죠), 인민들에게 좋은 대안을 제시하고 본질적인 균열들을 반영하여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단순히 '평당원' 이 대의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의원들이 어떻게 하면 평당원들의 다양한 관심사들을 포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통일된 정체성을 가진 조직이 아닌 다양한 집단을 포괄하고 있는 정당으로서는 각 집단들의 균열을 가장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균열의 반영은 마냥 당사자들을 바로 정당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킨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컨대 요행에 기댄 목소리들을 바로 힘으로 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힘들이 목소리들에 의해 통제받는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당 내부의 정파들끼리 민주적인 경쟁과 균열을 둘러싼 동원을 통해서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지 '추첨' 이라는 신의 주사위 굴리기로 소수자들을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자가 중요시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균열축이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들의 목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러한 주장들이 반복되는 것은 당내에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적인 이해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사료됩니다. 민주주의는 당위 이전에 현실이며, 따라서 기존의 신화적인 운동적 정치관에서 탈피하여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서 책임있는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실험' 혹은 '소수자' 등의 당위를 내세워 정치를 실험장으로 사용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당이 엄숙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험과 상상력만을 중요시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의견이 어떻든 많은 당원들이 이번 문제에 대해 많은 목소리를 내며 문제의 본질을 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데학생
광대의 사회학2009/01/10 18:52

진보신당 학생모임 내부의 문제 때문에 쓴 글입니다만 논쟁을 정리하는 1부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1부 교통정리 부분은 건너뛰고 읽어도 무방합니다.


1. 교통정리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쟁의 시발점은 금다니엘 님의 제안에 대한 권병덕 님의 비판입니다. 코스프레와 같은 집회, 장학기금 조성, 명동으로의 당사 이전으로 요약할 수 있는 금다니엘 님의 제안은 소위 '운동권' 의 이미지 개선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권병덕 님은 금다니엘 님의 근거 부실을 이유로 반지성주의라는 지적을 하였고, 최광재 님은 이에 대해 '창조적 파괴' 를 내세우며 재반박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권병덕 님이 지적하시는 부분과 최광재 님의 반박은 서로 맞물리지 못하고 있기에 일단의 교통정리가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우선 앞에서 간략히 언급했다시피 권병덕 님은 금다니엘 님의 제안을 구체적 근거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결여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지성주의로 규정 하였습니다. 금다니엘 님의 평소 언행을 모르는 저로서는 금다니엘 님의 제안이 불성실한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적극적으로 이론과 성찰에 반대하는 반지성주의의 경향을 띄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즉, 금다니엘 님의 주장이 현실정합성이 결여되었다는 측면에서는 비판받을 지점이 있겠고 저러한 제안이 반지성주의로 발전할 만한 소지가 있지만 그러한 제안 자체를 반지성주의적-정책팀을 축소하자는 정도의 제안이라면 충분히 저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이라고 규정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최광재 님은 권병덕 님의 반지성주의 규탄에 대해서 '창조적 파괴' 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반박을 하였지만 이것이 과연 권병덕 님의 주장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최광재 님의 반박에는 '창조적 파괴' 의 구체적 내용(최광재 님은 결과가 투입비용보다 크다면 창조적 파괴가 용인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결국 대차대조표를 성실하게 작성하라는 권병덕 님의 주장과 배치되지 않습니다)과 그것이 어떻게 지성보다 우월할 수 있는지, 혹은 금다니엘 님의 주장이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지성을 포함한 창초적 파괴라는 점을 효과적으로 논증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컨대 권병덕 님의 비판의 핵심이였던 '지성' 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쟁점인 명동 당사 이전에 대해서는 최광재 님이 반박 지점을 제대로 짚어 주셨습니다. 양 측의 주장을 요약해보자면 권병덕 님은 부지비용 및 기자들의 접근성,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정보량의 이점 때문에 당사 이전을 반대하며 최광재 님은 대중들과의 직접적 접촉 가능성 때문에 당사 이전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논쟁을 지켜보는 분들이 각자 주관에 따라 현실정합성을 따져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금다니엘 님과 최광재 님이 당사 이전의 찬성 논거로 내세우는 부분, 즉 대중과의 소통 가능성에 대한 관점의 기저에 깔려있는 정당관의 문제입니다.
 
2. 일반의지와 정당
 
 문제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가지 개념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회계약론> 등의 저서를 통해 자유민권 사상가로 알려져 있는 장 자크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이 그것입니다. 루소는 사회를 개별의지와 집합의지, 일반의지의 세가지 층위로 구분합니다. 개별의지는 개인의 의사이며 집합의지는 이 개별의지들의 단순한 총합, 그리고 일반의지는 집합의지의 본질을 이루는, 유기체로서의 사회의 단일한 의지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루소의 사상은 주권을 왕이라는 개인에게 집약시키는 보뎅 류의 왕권신수설의 사상적 얼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격적 주권론(여기서 인격적이라는 말은 긍정적 술어가 아닌, 주권과 의지를 지닌 단일한 실체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을 지칭합니다)의 흔적이며, 사회의 단일한 이익과 의지가 존재한다는 일반의지의 개념은 자신들이 일반의지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단일정당이나 개인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용도로 악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정당관의 문제로 돌아가겠습니다. 금다니엘 님과 최광재 님은 명동으로의 당사 이전의 가장 중요한 이점으로 대중과의 소통 가능성을 뽑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분 모두 그 대중이 어떠한 대중이며 이들과의 소통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비단 두 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두 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진보정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대중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최대한 자주 하는 것이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론적으로는 지당한 말입니다. 문제는 소통의 방식입니다.
 
 대중과의 소통을 주장하는 분들의 주장의 상당수는 대중의 일반의지와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그것을 반영해야 한다는 식의, 신과 인간 사이의 법열(法悅)을 방불케 하는 신학적 사고방식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을 '그 자체로서의(sui generus) 사회' 로 전치시키며 '사회는 신의 또 다른 이름' 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파 정당이 주장하는 허구적인 국민통합이 아닌, 사회적 균열에 기반한 정당체제를 전제로 행동하는 진보정당이 사회유기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단일한 질(質)로서의 대중을 가정하며(이는 파시즘의 주요 특징입니다) 그들의 단일한 일반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자세입니다.
 
 사회과학적으로 '서민' 의 정의는 본질적으로 모호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서민들의 단일한 이익이 존재한다는 사고 방식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서로 적대적인 계급의 투쟁의 역사라는 맑스의 도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수많은 사회학자들이 현대사회의 특징은 기능과 이익의 분화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일반의지의 존재여부에 대한 증명이 선행되지 않은채 일반의지와 직접 접촉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것은 소모적인 일입니다. 따라서 단일한 질(質)로서의 서민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발상은 현실정치에서는 하등 쓸모없는, 하지만 인민에 의한 직접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슬로건에는 부합하는 일종의 레토릭 혹은 신화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은 기본적으로 사회의 균열선을 따라 분열되어 있는 인민의 열정을 지배적인 모순을 축으로 규합하여 그것을 제도화된 형태로 정치영역에서 풀어내는 조직입니다. 이 과정 중 한가지만 결여되더라도 그것은 제대로 된 정당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대중과의 직접적 소통을 강조하는 분들은 인민의 열정을 정제하고 정치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생략하고 단순히 그것을 규합하여 정치외적인 혁명적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뉘앙스를 풍길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자코뱅 독재부터 스탈린 독재까지 좌우를 망라한 전체주의 정권들의 공통점은 '인민의 일반의지' 와 '지도자' 혹은 '변혁' 의 직접적 대면을 강조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보정당은 그렇지 않다고 강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라 수호자주의이며, 우리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민의 일반의지와 실제 일반의지(존재한다면)가 일치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정당 모델은 크게 전문가 정당과 대중 정당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양자의 이념형은 전자가 선거 전문가에 의한 '지지자' 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포괄정당이라면 후자는 뚜렷한 정강과 정책방향을 가지고 기층 당원들에 의해 움직이는 정당입니다. 무차별적으로 대중을 만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은 전문가 정당 모델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폭넓은 당원층을 기반으로 당원들간의 소통에 기반하여 당의 정책 수립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대중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전문가 정당은 본질적으로 득표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중과 정당 자신이 변증법적 관계를 통하여 서로 바뀌어나가는 것이 힘들며 정치공학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집권을 목표로 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100% 의 지지를 얻으려는 시도가 아닌, 이 시대의 가장 지배적인 모순을 균열축으로 삼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규합함으로써, 50%의 지지율을 목표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소통의 문제를 다시 언급하자면 정당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층위에서 활동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과의 소통은 기층 당원이 담당할 일이지 당 사무실 이전 등을 통해 당 공식기관이 나설 일은 아닙니다. 당 공식기관이 할 일은 기층 당원들이 일반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얻어온 정보들을 규합하여 전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정책을 만드는 '정치적인' 일입니다. 당원들의 존재 이유는 단순히 당의 위세를 위해서가 아닌, 일반 대중과 당 사이의 교두보의 역할을 하며 당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소통의 방식은 무차별적으로 대중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통해서는 일방적인 계몽 혹은 얼굴도장찍기 이상의 것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정당으로서는 피드백을 받을 방법이 부재합니다. 요컨대 '현재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는 자위 이상의 것이 나올 수 가 없습니다. 서로 층위가 다른 개별 대중과 정당 사이에 진솔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개별 대중이 아닌, 단일한 질로서의 대중의 일반의지를 당의 직접 접촉을 통해 읽어내겠다는 식의 발상의 무익함 역시 딱히 다시 말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일반의지' 를 등에 업고 '헤게모니 투쟁' 과 '지적 압도' 없이 사회를 바꾸어 보겠다는-저는 저 두가지 방법을 제외하면 정상적인 선거를 통하여 집권할 수 있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고 생디칼리즘 적인 방법 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주의주의가 아닌 냉정한 계산에 의한 정치입니다.
 
3. 운동을 넘어 정치로
 
 현재 진보정당에 몸담고 계신 많은 분들이 운동단체와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보수 양당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보수적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진보정당의 활동영역과 사회운동의 활동영역이 상당부분 겹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양자가 굳이 분리되어 각자 존재하는 이유 역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운동은 기본적으로 열정을 여과없이 힘으로 전화(傳化)하여 정치외적인 압력을 통해 모순을 일거에 타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정당은 열정을 제도적으로 정제하여 정치영역 내에서의 경쟁을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보다시피 양자의 작동 방식과 목표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정당을 통해 일거에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급격한 변화에 맞서 대자적으로 조직된 관료층 및 기존 헤게모니의 저항에 부딪쳐 좌초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혁명과 같이 정치외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굳이 그 매개체로 정당을 선택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언뜻 보면 정치를 통한 변화는 골치아프고 큰 효과도 없어 보이지만 가장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단이기도 합니다. 단지 급격한 변화 자체만을 원한다면 진보정당 활동이 아닌 아나키즘 혹은 볼셰비즘에 투신하여야 할 것입니다.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혹은 변동 자체에 의해 낙오되는 약자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우리는 정당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것입니다. 또한 정당은 가장 효과적으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사회운동은 그것에 투신할 수 있는 자원 혹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과대대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정 사회에 인민대중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원한다면 그것은 인민의 일반의지를 읽어냈다는 독단을 가진 혁명투사가 주도하는 일방적 개혁이 아닌, 당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정책을 가다듬고 의회에서 서로 다른 사회적 균열에 기반한 정당의 의원들과 부단히 토론하며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정당이라는 수단을 선택하여 정치과정에 뛰어든 이상 권력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 역시 지양하여야 할 것입니다. 조직되어 있는 헤게모니에 비조직적인 대오로 뛰어드는 것은 어떠한 성과도 거두기가 힘듭니다. 요새들어 거의 신앙의 수준으로 남용되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만 리더십은 좌우를 불문하고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10월 유신과 산업화는 불가능 했을 것이며 역시 김일성이 없었다면 주체사상은 태어나지도 못했으며 북한 체제는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권력과 정치에 대해 통찰력 있는 많은 연구를 수행한 위대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지나친 관료화로 민주주의가 고사하는 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희구했을 정도이니 정치에 있어서 리더십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필수적인 요소를 무조건 터부시하며 배척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기존의 의회 정당정치에 대해 '여의도 정치' 로 폄하하는 것은 2MB 대통령의 후보시절 발언에 자주 등장하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운동과 신자유주의 노선의 기묘한 동거가 발생합니다. 진보적 학자였던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이 사회질서 유지를 강조한 보수적 학자 뒤르켐의 사회에 대한 개념과 통하듯이, 그리고 맑시스트 발터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에 대해 나치의 법학자 칼 슈미트가 찬사를 보냈듯이 상황의 지나친 단순화는 극과 극을 통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저는 단순히 극단적인 것은 지양하여야 한다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러한 극단이 현실에서 어떠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가 입니다. 정치에 대해 좌우에서 퍼붓는 맹공은 정치에 대한 회의주의와 냉소주의를 유발하여 한국에서의 정상적인 정당정치가 이루어지기 힘들게 만들고, 이러한 정치의 실종이 다시 정치에 대한 회의를 재생한하는 악순환의 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이미 결과로 나타났다시피 이러한 악순환 구조는 신자유주의 노선의 손만을 들어주었습니다. 정치의 실종은 '혁명적 좌익' 세력을 충원해주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대중을 규합하여 2MB를 직접 권좌에서 끌어내리자는 식의 해법을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러한 직접행동에 의한 혁명적 변화는 기존의 헤게모니를 효과적으로 타파하지도 못할뿐더러 수많은 희생을 낳기 때문에 정당을 선택한 우리들로서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진보정당에 있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2MB 와 한나라당이라는 물화된 보수이념을 물리적으로 몰아내는 방법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쳐 깊숙히 새겨져 반동세력의 망령을 끊임없이 초혼하는 헤게모니적 인각을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헤게모니를 극복하는 것은 일거에 사회적 관계를 혁명적으로 재편하는 신적 폭력이 아닌, 정당이라는 진지를 둔 지난한 진지전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운동의 열정을 등에 업고 정권을 쟁취한 노무현 정부가 관료와 재벌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간 이유는 그들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해주고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진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보정당은 기본적으로 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집권 후의 과정은 더 이상 운동이 아닌 정치입니다.
 
 상상력 역시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진지한 성찰과 반성, 고민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떠한 실제적 효과도 낳지 못하는 감정의 발산으로 그칠 것입니다. 극단의 시대를 지나 침체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나는 사랑하듯이 혁명한다' 등의 멋지고 요란한 구호가 나돌며 상상력이 발산하는 것처럼 보일 때일수록 정작 중요한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에릭 홉스봄의 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데학생
내가 본 세상/사회2008/06/03 11:56
  5월 31일에서 6월 1일로 넘어가는 밤은 유난히 길고 격렬한 밤이었다. 25일 신촌에서부터 시작된 경찰의 강경진압-필자도 이 날 경찰의 포위망에 갇혀 연행될 뻔 하였다-은 서울시청 광장에서의 토끼몰이를 거쳐 기독교의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안식을 취했다는 거룩한 주일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신실한 개신교인인 2MB가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어기면서까지 너무나 청아한 북악산의 새벽을 더럽힌 이유는 자신이 예배드리기 전에 신에게 봉헌한 성전 서울의 '잡상인' 들을 모두 치우고자 함이었을까. 예수의 성전정화보다는 헤롯왕의 영아학살을 연상케 하는 그 '시민 청소' 의 전말을 필자가 보고 겪은 그대로 말하겠다.
 
  5월 31일 오후 7시, 예정된 대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개최되었고 그 곳에는 이미 오후 4시 반부터 마로니에 공원에서 행진해온 여러 단체들과 시민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필자 역시 친구들과 시청 앞에서 만나 자리를 잡고 앉아 곧 시작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였다.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학회나 진보신당 단위로 참석할까도 생각을 하였지만 2MB의 독선적 행각과 시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에 분노하여 나온, 집회경험이라곤 전무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기에 계속 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팬클럽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10만 명도 넘는 인원이 모였다며 탄성을 질렀고 필자 역시 플라자 호텔과 덕수궁 앞 도로까지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감탄을 하였다. 깃발을 들고 참여한 단위들도 많았지만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시민의 수가 훨씬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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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락치 논란으로 격앙된 시민들의 관용과 절제를 당부하는 자유 발언 등이 있고나서 얼마 후 가두 행진이 시작되었고, 평소와는 달리 이 행진은 명동이 아닌 충정로 일대로 진행되었다. 사실 충정로 일대로 진행하는 것을 보며 25일의 악몽이 떠올라 흠칫하기도 하였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의 행렬을 보며 시민들을 믿고 필자 역시 친구들과 함께 계속 행진을 하였다. 시민들은 행진 도중 중앙일보 사옥이 나오자 '중앙일보 폐간하라' 를 연호하였고 경찰청 건물이 나오자 '어청수는 사퇴하라' 를 외치는 재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필자일행은 처음에는 대열의 선두그룹에 속해 있었지만 잠시 편의점에서 요기를 하다 보니 선두 대열과 떨어져 후미에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전경의 포위망이 형성될 수 있으니 뛰자는 소리가 나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일행이 갈라지게 되었다.
 
  전경의 '허리끊기' 를 막기 위해 밀집을 외치며 사직터널을 통과하여 보니-터널을 통과하던 중 구호에 맞추어 경적을 울려주시던 시민분도 계셨다- 전경버스가 사직공원 앞에서 진로를 차단하고 있었고 시위대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뒤떨어져 있던 일행과 다시 합류하여 사후 대책을 논의하던 중, 차단지점 바로 앞의 갈림길에서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동자 분들의 대열이 등장하여 시민들의 환호를 받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전경들이 물러나 시위대는 전경버스 사이로 빠져나와 계속 행진을 하기 시작하였지만 경복궁역 일대에서 다시 전경들이 등장하여 대열을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나중에 들으니 몸싸움을 통해 저지선을 뚫었다고 한다) 곧 전경들은 빠지고 대열은 효자동으로 밀집하여 경복궁 담을 낀 골목에서 경찰과 대치하게 되었다.
 
  뒤늦게 학회 후배에게 연락을 해보니 어떤 길로 온지는 모르겠지만, 혹은 경복궁 앞의 대열에서 분리하여 나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삼청동 쪽에서도 동십자각 앞에서 전경과 대치선을 형성하였다는 연락이 왔다. 청와대로 통하는 효자동과 삼청동 양쪽에서 대치가 시작된 것이다. 광화문을 사이에 둔 채 약 500m 의 거리가 있는 양쪽에서 경찰과 대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원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2MB의 독선과 폭주에 대한 반감을 지닌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곧 11시 반이 넘어 지하철이 끊기고 최루탄이 터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실제로 소화기를 뿌리기는 하였다- 여전히 시민들은 거리를 메우고 있었고 모두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필자의 일행 역시 시민들과 함께 효자동 골목에서 '이명박은 물러나라' '비폭력'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지켰다(사실 필자는 지하철이 끊기기 직전에 귀가하려는 생각을 하였지만 오히려 친구들이 잡는 덕분에 이 후기를 쓸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큰 충돌 없이 대치가 길어지는 바람에 필자 일행은 긴장이 풀려 대치지점을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골목에 들어와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시간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12시 즈음해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갑자기 물줄기가 시민들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사태라 일행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 창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만 있었는데 곧 중년의 남성 한 분이 우산을 들고 물줄기를 막기 시작했고, 물줄기가 그친 후에야 우리는 대치가 이루어지는 골목으로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필자 일행이 나가자마자 또다시 살수가 시작되었고 효자동 골목 양변을 골고루 쏘아주는 경찰의 세심함에 필자 일행은 시민들과 함께 분노하였다. 또한 물줄기를 정통으로 맞으면서도 결국 살수가 잠시 멈출 때까지 꺾이지 않은 '의혈'(중앙대) 깃발에 모두가 함께 환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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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수는 간헐적으로 계속 이루어졌고 이 와중에 전경버스 지붕에 올라가 빼앗은 전경의 방패로 살수차의 물줄기를 막는 시민이 연행되려는 것을 구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살수가 계속 이어지자 분노한 시민들은 생수병을 전경들에게 던지는 '폭력' 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며 다친 전경을 골목으로 끌어와 치료해서 돌려보내는 '불법' 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더 이상 '고시철폐 협상무효' 라는 구호는 잘 들리지 않았으며 '독재타도' 와 '정권퇴진' 이 시민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격렬한 대치 속에서 학회 후배들이 걱정되어 연락을 해보니 삼청동 쪽에서도 살수를 하였고 모두 흠뻑 젖었다고 하여 바로 삼청동 일대로 달려 나갔는데, 효자동 골목을 나와 보니 광화문 일대에는 '해방구' 가 형성되어 있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고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이 거리에 앉아 기타를 치며 공연을 하고 있었다.
 
  격렬한 대치의 와중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운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민들을 보며 훈훈한 감정을 느낀 것도 잠시, 삼청동 동십자각 앞으로 급히 뛰어가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학회 후배가 필자를 맞이하였고 평소에도 여린 친구가 의료진에게 쇼크가 올지도 모른다는 주의를 듣고 다 젖은 담요를 두른 채 흠뻑 젖은 채로 앉아있었다. 물줄기를 잘 피해 다닌 필자 자신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끼며 친구에게 외투를 벗어준 후 다들 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다시 효자동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더 많은 모닥불들이 피워져 있었고 그 길에 만난 진보신당 당원 분들은 대치 당시 최전방에서 버텼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벽 2시 경에도 대치상황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고 필자와 친구들 모두 배가 고파 잠시 빠져나와 종로 일대로 나와 요기를 하였는데 종로 1가에서 일단의 전경들이 종각 방면으로 뛰어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아마 이들이 나중에 삼청동 진압에 투입되지 않았을까 한다.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새벽 3시 경 다시 삼청동으로 복귀하여 그 곳에 잠시 있다가 다 함께 효자동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인터넷 커뮤니티 DC inside '음식 갤러리' 의 유저들이 모은 성금으로 산 김밥이 배달되었고 그 외에 많은 시민들이 담요와 음식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 나왔다. 필자 일행이 세종로를 지나오는 길에 전경버스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 집결하는 것을 보았는데, 정보를 접하고 효자동과 삼청동 양쪽에서 달려 나온 시민들의 저지에 의해 세종로를 전경버스로 막으려는 시도가 무산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아마 이곳이 막혔더라면 삼청동과 효자동 양쪽이 각각 따로 포위되어 쉽게 각개격파 되었을 것이다.
 
  효자동으로 돌아와 보니 그 새 방수포까지 준비한 시민들이 살수차를 무력화 시키고 있었고 모닥불 앞에서 몸을 말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시민들은 사뭇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필자의 일행 역시 그 동안 계속 걷고 뛰었던 피로가 몰려와 효자동 옆 골목으로 들어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불안한 평온도 얼마 가지 못하고 새벽 4시 반 경, 잔인한 새벽은 시작되었다. 효자동 골목에서 대치중이던 시민들이 갑자기 썰물같이 빠지는 것을 보자마자 필자는 본능적으로 졸던 친구들을 깨우며 '뛰어!' 를 외쳤고 친구들과 함께 정부종합청사 편 인도로 진입하였다. 인도에 도착하니 삼청동쪽에서도 충돌이 일어나 진중권 교수가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다행히 삼청동쪽은 완전히 밀리지 않았다는 소식 역시 함께 들었다. 후에 들으니 전경 최정예 기동대인 소위 단셋(1001, 1002, 1003 기동대)이 투입되어 효자동이 그렇게 순식간에 밀린 것이라 하는데, 비무장한 시민을 상대로 최정예 기동대를 모두 투입하는 것은 시민들에 대한 이 정부의 시각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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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후, 시위에 처음 나와 보는데다가 처음 나온 시위에서부터 살수차에 전경 진압 등 거의 모든 진압방식을 봤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친구들을 안심 시키며 앞쪽으로 나가 도로를 보았다. 경복궁역 쪽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전경들이 살수차를 앞세우고 시민들의 대열을 밀어내며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정신없이 맞은편 인도로 뛰어온 후 효자동을 완전히 전경이 장악하기까지는 정말 순식간이었다. 순식간에 인도와 거리의 시민들이 분리되었고 대부분 대학생들만이 남은 거리의 대열은 살수차의 물줄기를 맞으며 전경들에게 밀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한총련(필자의 기억으로는 남총련과 전남대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을 필두로 한 학생회 조직들이-비권을 표방하는 연세대와 고려대 학생회가 광화문과 삼청동 쪽에서 각각 선두에서 싸우고 있었다-잘 버텨준 덕택에 광화문에서 대치지점이 새로 형성되었다.
 
  필자 일행 역시 밀리는 대열을 따라 광화문으로 이동하였고, 그 곳에서 선두에서 대치하느라 지친 학회 후배들과 합류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함께 보았다. 살수 포대 4개가 동시에 물줄기를 발사하며 시민들을 밀어내는 모습을. 하늘에는 계단구름이 떠있는 너무나 맑은 일요일 새벽 6시경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 의 하이라이트인 '헬름협곡 전투' 에서는 동이 틀 때 대군을 이끌고 온 마법사 간달프가 나타났지만 현실에서는 동이 틀 때 수많은 전경과 살수차가 시민들을 맞이하였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북악산과 경복궁, 그리고 새벽의 하늘을 가르는 물줄기와 색색의 깃발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현실은 충분히 초현실적이었다. 필자의 친구들과 학회 후배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그 광경을 보며 분노와 슬픔을 공유하였다. 피곤과 물에 젖은 몸을 이끌고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임과 동시에 마음속에 확실한 각인을 새겨주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온수' 를 외치는 시민들의 해학은 웃음이 가장 큰 무기라는 격언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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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 있는 시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살수차의 물줄기에 광화문 앞에서 대치하던 대열은 어쩔 수 없이 삼청동 동십자각까지 후퇴하여 삼청동에서 대치하던 대열과 합류하였고, 곧이어 투입된 수많은 전경들로 인해 합류한 대열은 인사동 입구까지 후퇴하였다. 친구들을 챙기며 함께 후퇴하느라 자세한 것은 보지 못했지만 이때도 전경의 폭력적 진압으로 인해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당시 전경의 진압 속도와 수, 그리고 대열을 보자면 충분히 많은 폭력이 발생했음은 가슴 아프지만 당연지사이긴 하다. 군사 행동에서 느껴지는 일시적인 일종의 집단적 응집성은 개인주의를 말살한다. 그 구성원 개개인은 악하지 않을지라도 폭력의 독점체인 국가가 수행하는 폭력의 도구로서 도구화된 전의경 집단은 거대한 폭력 유기체를 이루게 된다. 폭력 공동체에서 폭력의 실천은 사람들을 하나의 전체로 결속시킨다.
 
  결국 인사동 입구와 조계사 골목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시민들과 경찰은 다시 대치를 하기 시작하였고 경찰은 살수하겠다는 위협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종로 경찰서장이 나와 시민대표와 협상을 하자는 수작을 부렸다. 단일 대오가 아닌 자발적 결사체에 특정 '대표' 를 내보내라는 것은 여전히 배후설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실토하는 것이라며 실소를 하고 있던 중, 종각 일대에서 조계사 거리를 통해 전경부대가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시민들은 교통 표지판 등을 이용하여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전경부대의 추가투입을 저지하였다. 바리케이드를 보니 문뜩 시가전이 생각나며 파리코뮌과 80년 광주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절도사건 하나 없었던 80년 5월의 광주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다친 전경을 치료해주던 2008년 서울의 시민들이 겹쳐지며 애틋한 감정을 자아내었다.
 
  경찰의 시간 끌기에 지쳐있던 중, 새벽의 효자동과 같은 일이 또 발생하였다. 아니, 이번에는 그 이상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김남주 시인의 시 <학살 2> 가 바로 연상되었다.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전경이 경찰특공대로 교체되는 것을.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특공대를.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경찰특공대의 진압을.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인도로 들어오는 시민들이 끌려가는 것을. 아침 8시, 거리는 워커발에 짓밟힌 피의 강이었다. 바람은 워커발에 수없이 밟힌 여대생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아침은 살수차에 직격당한 여고생의 눈동자를 파먹고 경찰특공대는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민들을 끌고가고 있었다. 북악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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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에 고려대 총학생회 관계자에게 들은 바로는, 경찰 측에서 여러 명의 시민 대표들과 협상을 하는 시늉을 하며 시간을 끌다가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했다고 한다. 아 얼마나 계획적인 아침 8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폭력의 아침 8시였던가. 말 그대로 '시민 청소' 였다. 이때 일어났던 일들은 인터넷에서 직접 보는 편이 훨씬 더 생생할 것이다. 필자와 친구들은 안전한 곳에 있었기에 전반적인 흐름만 볼 수 있었을 뿐 최전방에서 일어나는 원초적 폭력들을 자세히 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대열이 밀리는 속도로 미루어보아 무지막지한 진압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인사동에서부터 낙원상가까지 밀리는 시간이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낙원상가를 지나 종로 3가로 나온 후 대열은 완전히 해산되었고 필자의 친구들은 귀가를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대열은 시청 앞에서 재집결 하였지만 그 수는 500명 남짓-필자가 9시에 귀가한 후 1000명 남짓의 시민들이 모였다 한다-이었고 다들 너무나 지쳐 잔디에 앉아 숨을 추스르고 있었다. 2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으니 모두 지쳤을 법하다. 이것이 내가 직접 겪은 사태의 전부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잠시 눈을 붙인 후 인터넷을 확인하니 이미 수많은 네티즌들이 6월 1일 새벽에 있었던 시간여행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공분하고 있었다. 필자의 친구들 역시 처음부터 격렬한 시위 현장을 보았음에도 다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분노하며 필자보다 먼저 6월 1일 저녁에 시청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하였다. 다른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비무장 시민을 상대로 한 대대적인 살수차의 동원과 대테러 부대인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폭력적 진압은 누가 보더라도 정당화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6월 1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은 그 동안 가두행진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상식적 수준' 으로 만들 정도로 벌거벗은 국가폭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위를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즐기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시민들에 비해 초조함을 보이며 발톱을 드러낸 국가권력은 이미 그 밑천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한나 아렌트는 폭력의 대립물은 비폭력이 아닌 권력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권력은 그 자신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지만 폭력은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인데, 이를 급진적으로 해석하자면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은 더 이상 자체로서의 정당성을 잃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스스로의 정당성과 주체적 모델을 찾지 못한 채 과거의 망령 박정희를 흉내 내고 싶었던 2MB는 70년대의 '산업역군' 대신 2000년도의 '뿔난 국민' 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이미 스스로의 연극에 도취된 그는 김재규 대신 차지철-어청수 경찰청장으로 재현되는-을 선택하는, 멸망의 순간마저 모방하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박정희는 '임자, 나는 괜찮아' 를 말하며 죽어갔지만 2MB는 최후의 순간에 무슨 말을 하게 될까.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였다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벼락을 맞고 죽는-게다가 2MB의 측근들은 벼락을 맞을 확률은 광우병에 걸릴 확률보다 높다고 한다-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살아남아 6월 1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2MB의 화려한 주말은 쇠고기 재협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전두환의 삼저 호황이 그의 원죄를 가려주지 못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2MB가 탄핵되는 날, 어청수 경찰청장은 2MB 보다 훨씬 큰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 노골적이면서도 끔찍한 밤이 시민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한, 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시민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전경들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화염병을 들지 않는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프레시안 기고 글
Posted by 데학생
일상의 궤적들2008/05/04 00:22

 유학가는 친구가 지방에서 올라온 관계로 오늘 있는 소고기 집회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어제 MB 탄핵 집회는 참석하였기에 간단하게나마 후기를 적어볼까 한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리니 출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청계청 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길이 막혀 도저히 갈 수가 없어 빌딩 뒤편으로 돌아가 결국 친구가 있는 대열로 합류를 하였다. 대열 합류 도중에 뒤쪽을 보니 청계천 다리가 있는 곳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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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 늦은지라 집회 도중에 참여하긴 했는데 사실상 별 차이는 없었다. 집회 주최측의 운영 미숙으로 인해 스피커의 음량이 충분하지 못해 앞에서 뭐라고 웅얼거리는 지 뒤쪽에선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였다. 앞에서 간간히 내지르는 간단한 구호와 함성만이 간헐적으로 전달될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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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인파가 모였지만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모두가 답답해 하던 중, 동국대 법대 학생이 만들어온 피켓-재치 넘치는 문구들이 적혀있었다-을 드니 모두가 웃으며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군중들이 외치는 자발적인 구호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문제는 주최측에서 구호를 제대로 준비해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너나먹어 미친소' '탄핵' 등의, 집회의 기본(?)인 박자마저 제대로 맞추지 못한 단순한 구호들-그나마 레퍼토리도 극히 적은-은 앞서가는 대중의 열정을 표현해주기엔 부족했다.

 집회가 후반으로 갈수록 조중동에 대한 공격 등, 정치성 풍부한 구호들이 등장하여 나름 이색적이긴 했다. 여하튼 이번 집회는 한국 대중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그 과제 역시 알 수 있는 집회였다. 자세한 분석은 추후에 따로 포스팅 하겠다.

-여담-

 주최측의 농간(?)으로 인해 깃발을 들고오지 못하는 바람에 꽤나 늦게 모였지만 집회에 참가한 진보신당 당원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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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씨는 그를 알아보는 수많은 시민들과 사진을 찍으며 진보신당의 이름을 파는데에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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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정, 정태인, 진중권씨가 모여서 한컷. 후에 노회찬 전 의원도 합류하였지만 다른 일정 관계로 급히 자리를 뜨는 바람에 나머지 사람들끼리 뒷풀이를 갔다.

 새벽 4시경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진중권씨의 지갑을 얇게 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즐거운 술자리였다.

Posted by 데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