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투덜2009/06/17 00:58

지난 18일 문광부의 한예종 종합감사 결과 통보와 연이은 황지우 총장의 사퇴로 인해 외부에 널리 알려진 한예종 사태는 날이 갈수록 대립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는 상식과 몰상식, 예술과 야만, 이성과 추악한 욕망 사이의 대립이자 한국 문화계의 향후 진로를 결정지을 만한 중대한 갈림길이다. 유인촌 장관은 이미 국립미술관장 해임 사건, 국립오페라단 해체 사건에 대한 대응에서 보여주었다시피 ‘잃어버린 10년’ 지우기에 혈안이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한국의 문화 발전과 예술진흥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야욕과 강박관념에 의한 것인지는 명백하다.

황지우 총장의 사퇴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소위 ‘한예종 죽이기’ 시나리오는 위와 같은 유인촌 장관의 독특한 문화철학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예종에 대한 전 방위적 공격이 문광부뿐만 아니라 공식 정부조직이 아닌 뉴라이트 세력과의 철저한 공조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미래포럼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작년부터 이미 한예종에 대한 공격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준비해왔으며 문광부의 감사 결과에 맞추어 꽹과리를 열심히 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행동방식은 흡사 서북청년단이나 나치 돌격대와 같은 유사정부조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일사분란하며, 오히려 문광부가 이들이 짜놓은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돌격대와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문광부는 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정부 외의 조직이라고 해서, 뉴라이트를 표방한다고 해서 한예종에 대한 이들의 고언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고언’ 이 아닌 명백한 ‘망언’만을 일삼는다면, 그리고 권력의 비호에 힘입어 자신들의 몽상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규탄과 타도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평소 한예종에 대한 이들의 공격내용과 지난 15일에 명동 포스트 타워에서 있었던 문화미래포럼의 심포지엄에서 나왔던 말들을 종합해 본다면 결국 이들은 이미 높은 수준의 예술교육을 제공하고 성과를 내고 있는 한예종에 고언을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을 규탄한다.

첫째, 한예종 교수진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공격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언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자신들의 추측에 근거하여 한예종의 정치적 성향을 재단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닭이 우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좌파 교수’ 가 거슬린다면 지난 시국선언에 교수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 학교를 찾아내 그곳부터 공격해야 할 것이다. 더 생산적인 방안으로는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 프리다 칼로, 브레히트, 네루다 등을 예술사에서 지워버리는 ‘예술사 바로잡기 작업’ 에 착수하는 쪽을 추천한다. 미래의 콩고물을 기다려야 하는 한예종 공격보다는 학술진흥재단에서 당장 연구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는 방안을 선택하는 쪽이 아무래도 합리적이지 않은가?

둘째, 이론교육 및 통섭교육에 대한 공격은 문광부와 문화미래포럼의 구성원들의 머릿속이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비어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주장이다. 근대 이후 예술은 더 이상 자연의 모사가 아닌, 작가의 독창적인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사상과 주관이 없는 기술에서는 복제 이상의 ‘예술’ 이 나올 수 없다. 그리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아방가르드 없이 예술은 발전할 수 없다. 게다가 숭고한 예술의 차원이 아닌 세속의 비즈니스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이들의 무능은 명백히 드러난다.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에 의하면 현대 문화산업에서 예술품이 상품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미학이론과 담론이 필수적이다. 작품의 가격이 가장 높은 현대 작가 중 한 명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실기 기술 때문에 가격이 높은가? 포르말린 속에 담겨 있는 동물의 사체를 비싼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론과 담론이다. 한예종을 공격하는 세력의 주장을 따른다면 우선 문화미래포럼에 소속된 교수들부터 학과를 폐지하고 의대에 가서 포르말린과 메스를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공립 대학은 부실하고 민영화만이 살길이라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 없는 신앙에 가깝다. 모든 주장이 논파당한 후 고장난 라디오처럼 민영화의 주문만을 반복하여 외우는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 한예종에 대한 모든 부당한 간섭과 공격을 중단하고 새로운 사립 예술대학을 설립해야 한다. 민영화가 만병통치약이라면 이들이 모여 만든 신생 대학이 곧 비효율적인 한예종을 압도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위대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시장에 뛰어드는 일만 남았다. 번거롭게 이미 비효율적인 관료체제와 좌파 교수들에게 포섭되어 있는 한예종을 개혁하기 보다는 뜻이 맞는 ‘전문가’ 들이 모여 새로운 사립 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빅뉴스>에서 무료로 대학 홍보를 해주고 ‘실크로드 포럼’ 에서 학생들도 공급해줄 것이다. 한국 예술교육의 발전을 위해 문화미래포럼 교수들은 당장 사직서를 쓰고 사학재단부터 만들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결국 이들의 한예종 공격은 합리적인 이론적 근거를 결여한 채 무지에서 나온 아집 혹은 콩고물에 대한 추악한 탐욕에 근거한 것이다. 유인촌 장관의 빈곤한 예술관, 정치적 야욕과 뉴라이트 세력의 물질적 욕망 혹은 근거 없는 몽상이 만나 현실에 구현되었을 때 펼쳐질 한국 문화계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에 비해 이들이 문제삼는 한예종은 예술을 사랑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즐거운 배움의 터를 제공해주고 수많은 대외적 성과를 산출하는, 실력있고 아름다운 예술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대학생들과 연대하는 우리 진보신당 학생모임은 이 땅의 예술을 지키기 위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위대한 싸움에 동참할 것을 선언하는 바이다. 권력과 물질에 대한 추악한 욕망이, 척박한 땅에 이제 막 새싹을 틔운 순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나아갈 길을 정해야 한다. 예술이냐, 야만이냐. 우리는 함께 선언한다. 강풍은 꽃을 꺽을 수는 있지만 봄을 막을 수는 없다고. 이 길고 엄혹한 겨울 속에서 예술이라는 빛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은 모두가 함께 한발짝씩 나아갈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틀린 역사의 미로 끝에서, 한예종은 모두와 함께 다시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한 우리는 찬란한 도시로 입성할 것이다. - 아르튀르 랭보
(Et a l'aurore, armes d'une ardente patience, nous entrerons aux splendides villes)


 

2009년 6월 17일
진보신당 학생모임
club.cyworld.com/newprogress

Posted by 데학생
일상의 궤적들2008/07/15 03:13

 어제는 최고기온 30도 이상의 폭염이긴 하였지만 아무튼 날씨는 화창하였기 때문에, 방에 박혀서 책만 볼 수는 없다는 바람이 들어 하릴없이 대학로로 가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나를 대학로의 예쁜 소규모 카페 ‘수다’ 로 데려갔고, 우리는 한참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나중에 보니 3시간은 넘게 수다를 떤 것 같다). 재미있게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 보니 어느덧 대화는 시국진단에까지 이르렀다.

 아마 황지우 시인이 아직 살아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총장으로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시작이 된 걸로 기억한다. 황지우 시인이 노무현 코드인사로 분류되어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양촌리 유인촌이 물러나라고 할 급수의 인물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며 함께 유인촌을 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친구의 한마디

“내 친구가 유인촌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된 것을 보더니 갈 데까지 간 것 같대”

에 우리는 모두 동의하며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테이블 옆에 전인권을 연상케 하는, 선글라스와 봉두난발의 중년 괴인이 스윽 나타나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방금 유인촌이 문광부 장관이 되어서 갈 데까지 갔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머릿속에서 사적인 대화를 방해받은 데에 대한 황당한 감정과 유인촌의 막장 행각들이 뒤얽혀서 떠오르는 동안 이미 친구가 그냥 다른 친구가 한 말이었다고 대충 대거리를 하여 그 괴인은 테이블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 괴인은 카페를 나가며 종업원에게 투덜대기 시작했다.

“유인촌 장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칭찬해줘야지 왜 욕을 합니까?”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의 정치> 를 권해주고 싶었다(그리고 괴인이 종업원에게 투덜거릴 동안, 소심한 나는 심정윤리와 책임윤리는 구분하는게 기본 아니냐고 친구에게 궁시렁대고 있었다).

 여하튼 괴인이 나간 후 친구와 나는 매우 황당해 하면서-게다가 친구의 어머니가 예술계에 종사하시기 때문에 그 황당함은 더 하였다- 그 괴인의 정체에 대해 추측을 하기 시작하였다.

 친구와 함께 세운 유력한 가설은 아마 유인촌의 친척이 아닐까 하는 것이였다.

 하고 다니는 건 영화감독 혹은 미술가의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제정신 박힌 예술인이 매너까지 밥에 말아먹으며 유인촌을 옹호할리는 없잖은가. 한국 예술인들의 질이 그 정도로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도대체 카페에서 다른 테이블의 대화를 듣고 멋대로 끼어드는건 어디서 배워먹은 매너인 줄 모르겠다. 아마 카페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들리는 대화의 내용들에 일일히 반응을 보인다면, 아마 나는 카페에 갈때마다 2MB 신도들과 전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유인촌 친척분(?), 매너가 황이네.

 여하튼 2MB의 지지율이 왜 7%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자발적 충성’ 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Posted by 데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