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투덜2009/06/17 00:58

지난 18일 문광부의 한예종 종합감사 결과 통보와 연이은 황지우 총장의 사퇴로 인해 외부에 널리 알려진 한예종 사태는 날이 갈수록 대립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는 상식과 몰상식, 예술과 야만, 이성과 추악한 욕망 사이의 대립이자 한국 문화계의 향후 진로를 결정지을 만한 중대한 갈림길이다. 유인촌 장관은 이미 국립미술관장 해임 사건, 국립오페라단 해체 사건에 대한 대응에서 보여주었다시피 ‘잃어버린 10년’ 지우기에 혈안이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한국의 문화 발전과 예술진흥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야욕과 강박관념에 의한 것인지는 명백하다.

황지우 총장의 사퇴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소위 ‘한예종 죽이기’ 시나리오는 위와 같은 유인촌 장관의 독특한 문화철학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예종에 대한 전 방위적 공격이 문광부뿐만 아니라 공식 정부조직이 아닌 뉴라이트 세력과의 철저한 공조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미래포럼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작년부터 이미 한예종에 대한 공격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준비해왔으며 문광부의 감사 결과에 맞추어 꽹과리를 열심히 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행동방식은 흡사 서북청년단이나 나치 돌격대와 같은 유사정부조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일사분란하며, 오히려 문광부가 이들이 짜놓은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돌격대와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문광부는 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정부 외의 조직이라고 해서, 뉴라이트를 표방한다고 해서 한예종에 대한 이들의 고언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고언’ 이 아닌 명백한 ‘망언’만을 일삼는다면, 그리고 권력의 비호에 힘입어 자신들의 몽상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규탄과 타도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평소 한예종에 대한 이들의 공격내용과 지난 15일에 명동 포스트 타워에서 있었던 문화미래포럼의 심포지엄에서 나왔던 말들을 종합해 본다면 결국 이들은 이미 높은 수준의 예술교육을 제공하고 성과를 내고 있는 한예종에 고언을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을 규탄한다.

첫째, 한예종 교수진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공격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언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자신들의 추측에 근거하여 한예종의 정치적 성향을 재단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닭이 우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좌파 교수’ 가 거슬린다면 지난 시국선언에 교수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 학교를 찾아내 그곳부터 공격해야 할 것이다. 더 생산적인 방안으로는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 프리다 칼로, 브레히트, 네루다 등을 예술사에서 지워버리는 ‘예술사 바로잡기 작업’ 에 착수하는 쪽을 추천한다. 미래의 콩고물을 기다려야 하는 한예종 공격보다는 학술진흥재단에서 당장 연구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는 방안을 선택하는 쪽이 아무래도 합리적이지 않은가?

둘째, 이론교육 및 통섭교육에 대한 공격은 문광부와 문화미래포럼의 구성원들의 머릿속이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비어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주장이다. 근대 이후 예술은 더 이상 자연의 모사가 아닌, 작가의 독창적인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사상과 주관이 없는 기술에서는 복제 이상의 ‘예술’ 이 나올 수 없다. 그리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아방가르드 없이 예술은 발전할 수 없다. 게다가 숭고한 예술의 차원이 아닌 세속의 비즈니스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이들의 무능은 명백히 드러난다.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에 의하면 현대 문화산업에서 예술품이 상품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미학이론과 담론이 필수적이다. 작품의 가격이 가장 높은 현대 작가 중 한 명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실기 기술 때문에 가격이 높은가? 포르말린 속에 담겨 있는 동물의 사체를 비싼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론과 담론이다. 한예종을 공격하는 세력의 주장을 따른다면 우선 문화미래포럼에 소속된 교수들부터 학과를 폐지하고 의대에 가서 포르말린과 메스를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공립 대학은 부실하고 민영화만이 살길이라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 없는 신앙에 가깝다. 모든 주장이 논파당한 후 고장난 라디오처럼 민영화의 주문만을 반복하여 외우는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 한예종에 대한 모든 부당한 간섭과 공격을 중단하고 새로운 사립 예술대학을 설립해야 한다. 민영화가 만병통치약이라면 이들이 모여 만든 신생 대학이 곧 비효율적인 한예종을 압도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위대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시장에 뛰어드는 일만 남았다. 번거롭게 이미 비효율적인 관료체제와 좌파 교수들에게 포섭되어 있는 한예종을 개혁하기 보다는 뜻이 맞는 ‘전문가’ 들이 모여 새로운 사립 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빅뉴스>에서 무료로 대학 홍보를 해주고 ‘실크로드 포럼’ 에서 학생들도 공급해줄 것이다. 한국 예술교육의 발전을 위해 문화미래포럼 교수들은 당장 사직서를 쓰고 사학재단부터 만들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결국 이들의 한예종 공격은 합리적인 이론적 근거를 결여한 채 무지에서 나온 아집 혹은 콩고물에 대한 추악한 탐욕에 근거한 것이다. 유인촌 장관의 빈곤한 예술관, 정치적 야욕과 뉴라이트 세력의 물질적 욕망 혹은 근거 없는 몽상이 만나 현실에 구현되었을 때 펼쳐질 한국 문화계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에 비해 이들이 문제삼는 한예종은 예술을 사랑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즐거운 배움의 터를 제공해주고 수많은 대외적 성과를 산출하는, 실력있고 아름다운 예술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대학생들과 연대하는 우리 진보신당 학생모임은 이 땅의 예술을 지키기 위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위대한 싸움에 동참할 것을 선언하는 바이다. 권력과 물질에 대한 추악한 욕망이, 척박한 땅에 이제 막 새싹을 틔운 순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나아갈 길을 정해야 한다. 예술이냐, 야만이냐. 우리는 함께 선언한다. 강풍은 꽃을 꺽을 수는 있지만 봄을 막을 수는 없다고. 이 길고 엄혹한 겨울 속에서 예술이라는 빛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은 모두가 함께 한발짝씩 나아갈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틀린 역사의 미로 끝에서, 한예종은 모두와 함께 다시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한 우리는 찬란한 도시로 입성할 것이다. - 아르튀르 랭보
(Et a l'aurore, armes d'une ardente patience, nous entrerons aux splendides villes)


 

2009년 6월 17일
진보신당 학생모임
club.cyworld.com/newprogress

Posted by 데학생
광대의 사회학2008/12/12 23:16

 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주문과는 별개로 현실사회에서 역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담론의 한가운데에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라는 카의 언술이 자리 잡고 있다. 기존의 역사에 대한 해석의 관점은 미래를 재생산 하는 세대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 미래의 모습마저 바꿀 수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근대화의 측면을 읽어낸다면 그것은 ‘더 발전한 근대’ 로의 기획으로 이어지며 국가의 국가에 대한 지배의 측면을 읽어낸다면 그것은 ‘자주적 민족국가’ 의 기획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역사의 해석을 둘러싼 투쟁은 곧 미래에 대한 주도권을 둘러싼 투쟁이다.

 지난 10년간의 민주화 정부에 이어 집권한 2MB 정부는 기존의 정권들과는 확연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사법기관과 경찰력을 동원한 노골적인 물리력만이 아닌, 이데올로그들을 동원한 역사에 대한 투쟁으로도 표면화되어 격렬한 대립을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전선에서는 현 정권을 대변하는 뉴라이트 진영의 학자들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그것의 근본은 ‘식민지 근대화론’ 과 ‘식민지 수탈론’ 의 대립에 연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오가는 가운데 뉴라이트 세력에 대한 감정적 규탄으로 수렴되고 있는 전황은 진정한 적을 볼 수 없게 만든다. 

 뉴라이트 이데올로그들을 규탄하는 주장의 상당수는 그들이 ‘친일세력’ 이라는 레토릭으로 구성되어 있다. 뉴라이트 세력이 기존의 민족해방(National Liberty)계열의 운동세력에 대항하여 탈민족 담론의 일환으로서 내세운 ‘식민지 근대화론(이하 근대화론)’ 은 기존 시민사회의 식민시대에 대한 공식적 기억인 ‘식민지 수탈론(이하 수탈론)’ 에 대항하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그들 자신에게 친일혐의의 원죄를 부여하는 부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근대화론의 근본적 문제점은 그것이 ‘친일적’ 이라는 데에 있지 않다.

 기존의 수탈론은 조선왕조는 조선 후기 중소상인층 및 부농(富農)의 성장으로 인해 자체적인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 자본주의 맹아(萌芽)론이라 불리는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자체적으로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과정을 밟고 있던 조선사회의 발전흐름을 단절시킨 절대악에 다름 아니다. 반면 근대화론은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따라서 근대화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체적 발전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던 조선에 강제적으로나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도입해준 일제의 식민지배는 조선을 역사의 발전경로에 편입시켜준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공유지점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두 이론은 한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양자는 모두 단선적인 역사 발전경로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단선적 역사 발전경로의 대표적 모델로는 맑스의 5단계 발전론이 있다. 원시공산제, 고대노예제, 중세봉건제, 근대자본주의, 사회주의의 단계들로 이루어져 있는 ‘정상적인’ 역사발전 경로와 발전이 없이 정체되어 있는 ‘아시아적 생산양식’ 이라는 경로의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 맑스의 5단계 발전론은 수탈론과 근대화론 모두에 인식론적 기틀을 제공해준다. 즉, 기존의 수탈론은 조선이 ‘정상적 역사발전 경로’ 의 선상에서 중세봉건제의 단계에서 근대자본주의로 넘어가는 단계에 있었다고 간주하는 반면 이에 반대하는 근대화론은 조선이 발전을 할 수 없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규정된다고 보고 있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조선사회의 생산양식에 대한 규정의 차이이지 일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후자는 전자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종속변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그것이 ‘친일적’ 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꼬리를 붙잡고 열을 올리는 희극적 현상이다. 물론 근대화론의 이론적 한계는 명백하다. 일제의 대(對)조선 근대화 기획은 뉴라이트 이데올로그들이 신비주의적으로 후대의 경제발전과 연결 짓는 산업화가 아니라 조선을 농업 자본주의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탈론의 관점에서 조선사회의 생산양식에 대해 철지난 사회구성체 논쟁을 반복하는 것 역시 생산적인 비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핵심은 양자 모두 단선적 역사발전이라는 인식론적 한계에 갇혀있다는 점이다. ‘근대’ 는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이룩해야 할 대상이며 또한 근대를 이룩한 것만이 기록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뉴라이트 세력과 2MB정부가 외치는 근대화론 및 산업화 찬양은 결국 ‘자본주의적 근대’ 에 대한 철저한 맹신에서 비롯된다. 이에 대해 조선의 내재적 발전 가능성을 언급하거나 박정희 대신 누가 대통령이었더라도 경제성장을 했을 것이라는 식의 비판은 오히려 ‘자본주의적 근대는 좋은 것’ 이라는 상대방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우를 범하게 될 뿐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역사를 둘러싼 투쟁의 상당수는 이러한 근본적인 지점을 무시한 채 ‘친일파, 매국노, 독재자’ 에 대한 저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근대화라는 가치 자체에 대한 성찰이 없는 자들이 ‘친일파, 매국노, 독재자’ 들을 눌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 싸움은 애국자와 친일파의 싸움, 혹은 민주주의와 독재의 싸움이 아니라 한국의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포섭되지 않은 타자들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환원되어야 한다. 근대화 또는 산업화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억압된 식민지 조선인, 노동자, 여성 등을 주체로 회복시키고 그 위상을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백번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은 조선왕조를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지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인들을 억압했기 때문에 비판받아야 한다. 대다수 민중들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비현실적인 관념론에만 몰두했던 조선왕조와 지배계급 역시 일제와 마찬가지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한 노동자들을 억압한 독재정권은 말할 것도 없으며 여성을 억압한 민주화 운동도 비판적으로 성찰되어야 할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시민사회의 운명을 놓고 벌이는 역사 투쟁은 과거의 가치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그것들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결과를 낳아야 하지 낡은 가치들을 그대로 자신의 관점으로 수용한 채 그 가치들에 기반한 감정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자신이 속한 민족 혹은 국가에 대한 감정적 동일시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들에 대해 거리를 두고 낯설게 보기 위하여 배우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를 배움으로써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과거의 낡은 유산들을 깨닫고 그것을 변혁할 수 있다. 그것이 산업화의 역사든 통일운동의 역사든 ‘자랑스러운 역사’ 보다는 ‘부끄러운 역사’ 가 강조되어야 하며 주도자보다는 외부자에게 시선을 돌려야 하는 이유이다. 역사는 역할모델이 아니라 반면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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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세상/사회2008/10/19 00:11

 지난 5월부터 7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촛불은 거리를 가득 메꾸었고 이는 한국 시민운동사에 거대한 이정표로 남았다. 하지만 의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터져나온 촛불의 열정을 받아 지속적인 제도를 구축할 수 있는, 국가에 왼손을 새겨넣을 수 있는 제도권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촛불은 쏟아지는 장마에 사그러들었다. 그리고 촛불의 열기에 대한 2MB 정부 및 반동 세력의 대대적인 반격이 가해지는 지금, 촛불 2기가 출범하였다.

 "한국에 하나의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촛불이라는 유령이. 2MB과 강만수, 조중동과 강부자 등 한국의 모든 반동 세력들은 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시민들은 얻을 것이 많은 대신(그것이 전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잃을 것도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촛불 2기의 미래는 다소 비관적으로 보인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종로에서 공부를 하다가 밖이 시끄럽길래 상황을 확인하고 잠시 교보문고에 들린 후 집회를 지켜보았다.


깃발들이 많이 있지만 일반 시민들의 수도 생각보다 많았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모여서 놀랐다. 물론 예전의 촛불을 생각한다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이미 거의 끝장을 본 촛불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사람이 모였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웠다. 기륭전자 노동자 분과 촛불정국때의 일을 빌미로 면허를 박탈당한 운전자 분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런데 무대를 보니 예전과는 다른 구호가 적혀있었다. '뉴라이트 해체하자!!' '대안 교과서 찢어버리자!!'. 2MB 정부의 정책에 대한 직접적 비판 보다는 그 이데올로그인 뉴라이트를 타겟을 삼은 듯 하다. 곧 민족반역자처단협회 라는, 예전 촛불정국 때부터 활동했던 단체의 회원이 나와 민족을 위해 일한, 자그마치 안중근 '장군' (이 분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이유는 당시 일본의 지배적 이념이였던 '아시아주의' 를 더렵혔다는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것 같다)과  윤봉길 의사가 어떻게 '테러리스트' 가 될 수 있냐고 열변을 토하였다.(알카에다도 다 자기 민족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그러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는 가치판단어가 아니라 서술적 용어이다. 독립군 활동을 한 안중근은 주 활동이 테러가 아니였으므로 테러리스트로 분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윤봉길은 테러리스트 맞다. 명심할 점은 테러는 전략적 수단이지 절대악은 아니다)

 그리고 어느 역사교사의 뉴라이트 규탄이 이어진 후 사회자가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를 찢은 후 화형에 처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이영훈과 안병직 교수의 논문을 태웠다면 모를까, 정치적 의도로 서술된 대안교과서를 태우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코멘트하지 않겠다. 하지만 뉴라이트에 대한 규탄은 분명 과잉 민족주의적이다. '친일 매국노' 라는 쌍팔년도 레토릭을 아직까지 고수해야 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고, 공감 역시 전혀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이에 환호하였다. 지식인의 비틀린 근성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 있어 뉴라이트는 힘에 대한 추구로 인해 비판받을 대상이지 '친일적' 이기 때문에 비판받을 대상은 아니다. 엄밀한 논의 없이 과도한 민족주의적 레토릭으로 뉴라이트를 비난하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브루스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지적했다시피 한국은 기형적일 정도로 민족주의에 경도된 국가이기 때문에 뉴라이트는 당분간 일종의 사회악으로 취급받을 것이다. 만약 2기 촛불의 주최측이 의도적 전략으로 뉴라이트를 타겟으로 삼았다면 헤게모니 투쟁의 대상은 적절하게 선택한 것 같다. 물론 그 투쟁은 이론적 엄밀성 보다는 대중의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여 동원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동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뉴라이트의 역공세에 오히려 사태는 더 악화될 것이다. 결국 민족주의의 늪으로 빠지는 셈이다.

 만약 촛불 2기가 덜떨어진 민족주의자들의 열정에 끌려간다면 촛불의 미래 역시 암울할 것이다. 이렇게 갈 것이라면 차라리 끝내는 것이 낫다. 시민의 촛불이 민족의 촛불, 국가의 촛불이 되는 순간부터 촛불은 완전히 노무현의 신화로 후퇴한다.
Posted by 데학생
내가 본 세상/사회2008/08/17 13:16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한반도 대운하 신문' 이라는 괴신문을 보게 되었다. 저 악명높은 프리존 뉴스나 뉴라이트 청년 웹진 바이트 등 온갖 저급 흑색언론(검은 셔츠단을 상기하자)을 수없이 보아 왔지만 이번 것은 강도가 좀 더 강했다. '한반도 대운하 신문' 이라니!

-신문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kgwoonha.com/

 특정 토목 사업을-추진여부도 확정되지 않은- 제호로 내걸고 그것만을 보도내용으로 삼는 신문이 유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아우토반 차이퉁', '후버 데일리 트리뷴' 이라고 하니 조금 그럴듯해 보이기는 한다.

 신문의 창간기사를 보니 한반도대운하 방송국도 운영한다고 한다. 물론 신문과 방송 둘 다 온라인 상에서만 활동할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런 신문과 방송을 굳이 찾아서 보는 사람이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차라리 변희재의 빅뉴스를 보겠다.

 여하튼 이런 괴상한 신문을 도대체 누가 창간하였나 궁금해서 스크롤을 쭉 내려보았다. 웹페이지에 명시된 바로는 '한반도대운하재단' 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와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이 주축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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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한반도대운하재단' 으로 검색을 해보니 버젓한 홈페이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 빈곤한 각종 시민단체들도 홈페이지 혹은 카페를 운영하는 마당에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지 않는지 궁금해하던 차에 취업사이트에 한반도대운하재단 이라는 검색어가 걸려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그마치 공기업이다. 궁금해서 검색을 더 해보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정보를 보았다. 지난 4월 4일 한반도대운하 재단은 국토해양부 산하로 편제되었고 그 동안 한반도대운하 국민운동이라는 관제운동을 펼쳐오던 김주성이라는 사람(위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한반도대운하 신문의 발행인이다)이 이 재단의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고 한다.(http://www.lifebokji.com/news/article.html?no=376)
 
 2MB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지금까지 작은 정부를 강조하며 민영화에 신들린듯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게다가 최근에는 우량 흑자기업인 인천공항마저 민영화를 한다고 하여 민영화의 기준에 대한 의문마저 일게 하였는데, 이제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

 국고는 한정되어 있기에(게다가 대책없는 감세로 인한 세수감소는 치명적이다)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선별적으로 이루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2MB는 경제논리 대신 진영논리로 공기업 및 정부를 운영하려는 모양이다. 인천공항 대신 한반도대운하 재단이라니, 항공기에서 바지선으로의 퇴보이다.

 한국에서 토목공사와 관련된 이익집단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은 무섭다. 이들에게 전체 사회의 복리는 안중에도 없다. 그리고 2MB는 한반도대운하라는 거창한 '떡밥' 을 던짐으로서 떡밥을 둘러싼 파장만으로도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생겨나는 기적을 연출하였다. 대운하 관통 예정지에 대한 부동산업의 성황과 그에 이어 대운하 사업 홍보팀까지 모든 것은 돈으로 움직인다.

 관제운동이나 벌이는 자신의 추종자들과 권력에 눈이 먼 자들에게 떡고물을 쥐어주고 괴벨스의 입으로 활용하는 것이 2MB가 말하는 작은 정부라면, 이 정부는 굳이 2MB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작은 정부가 될 것 같다. 도대체 이런 정부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시민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저절로 작아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런데 이 신문과 재단은 만약 한반도대운하가 공식적으로 취소되거나 완공된다면 무슨 일을 할까? 아마 전자의 경우에는 인지부조화 현상을 일으키며 계속 대운하 건설을 주장하며 연명을 할 것 같다(종말예언이 어긋난 교주의 운명이랄까). 그런데 대운하 완공후의 행보는 쉽게 예측이 되지 않는다. 아마 대운하에 띄운 12층 규모의 유람선에서 2MB를 모시고 풍악을 울리고 있지 않을까?

Posted by 데학생
내가 본 세상/사회2008/08/17 02:31

 1945년 8월 15일이 아닌, 1948년 8월 15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광복절’ 이 아닌 ‘건국절’ 이라는 명칭에 익숙한 사람은 아예 극소수에 불과하다. 의도적으로 건국이라는 표현을 각인시키려 애쓰는 것 자체가 집단의 기억 속에서 광복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가 강고하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하지만 뉴라이트 학계를 등에 업은 2MB 정부는 시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기 위하여 건국 60주년을 강조한 8.15 기념행사를 강행하였다. 그 동안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대표되는 뉴라이트 학계의 주장과 최근 건국절과 관련된 이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이들이 멀쩡한 광복절을 놓아두고 건국절 이라는 생소한 명칭에 집착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일단 이들은 고등교육을 받았고 고도의 지적 훈련을 거친 학자 집단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해석투쟁과 집단기억의 선별 작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10년의 민주화 정부를 명분만 내세운 무능한 세력으로 낙인찍은 ‘잃어버린 10년’ 이라는 레토릭은 이들의 최고 성공작이다. 그렇지만 안티테제만으로는 효과적인 통치를 위한 헤게모니 구축이 힘든 법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국민들의 세계관 자체를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도록 개조할 필요가 있었고, ‘경제 대통령’ 이라는 구호로 현재를 개조한 이들이 눈을 돌릴 곳은 세계관의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과거의 영역이다. 그리고 ‘경제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천박한 경제동물 및 신실한 국가주의자의 이중적 면모-위대한 박정희는 시장주의자였을까-를 과시하는 이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경제성장을 통한 강대국의 건설’ 이다.

 2MB의 출신지역에 대한 논란이 보여주듯 내셔널리즘이 유독 강한 한국에서 일본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는 반동 세력들에게 있어 하나의 원죄에 가까웠다. 기존의 올드 라이트가 이 논란을 회피하는 데에 급급하였던 반면, 경제를 내세우며 헤게모니를 어느 정도 장악한 뉴라이트는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이 논란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즉, 친일 경력을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친일도 정당한 행위였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다.

 물론 건국절 이라는 명칭 자체에 친일적 요소가 반영된 것은 아니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1948년 8월 15일 법적으로 건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엄연히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이 광복절을 대체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뒤에 깔려 있는 의도가 정치적으로 불순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앞에서 지적하였다시피 뉴라이트 세력의 지상목표는 경제발전을 통한 강대국의 건설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실력양성론과 매우 흡사하다. 그리고 이들의 대다수가 본격적인 동원이 이루어졌던 30년대 들어 변절하였다는 점은 더욱 시사적이다. 안병직 교수를 위시한 뉴라이트 세력의 상당수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미제와 결전을 벌일 수 있는 자주적인 통일강국을 건설하고자 하였던 NL(National Liberty : 민족자주) 및 주사파 출신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은 결과론적으로 남한이 더욱 강대국이 되자 미련 없이 김일성을 버리고 박정희로 방법론을 갈아탔을 뿐이다.

 이들이 건국절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실시한 이영훈 교수와의 대담에서 그는 이승만은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였기에 건국을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결과론적 사고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승만이 건설한 국가가 현재 위대한 것과 이승만이 건설한 국가가 위대한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게다가 현재의 정부가 아무리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도 이승만 정부와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요컨대 건국절 이라는 명칭의 뒤에는 강한 국가에 대한 도착증적인 욕망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뉴라이트 세력의 이론 속에서 친일 경력은 부국강병 및 실력양성을 위한 선각자의 솔선수범이 되며 분단국가 수립은 ‘위대한 경제발전이 운명 지워진’ 국가를 건설한 선견지명이 된다. 그리고 여기에 민중의 희생과 사상의 실종에 대한 비판이 자리 잡을 곳은 없다.

 그렇기에 건국절에 대한 비판은 이들의 천박함과 성찰 없음에 대한 비판이 되어야지 ‘친일파’ 라는 비난이 되어서는 안 된다. 뉴라이트는 스탈린 시절에 살았다면 아내와 자식이 수용소에 끌려갔음에도 스탈린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던 몰로토프와 같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좌파와 우파, 그리고 사람들의 희생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경제수치로 대변되는 전체의 성장만이 중요할 뿐이다.

 8월 15일 제 60주년 건국절에서 2MB 가 행한 연설은 2MB를 위시한 뉴라이트 세력의 사상의 정수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단결과 통합, 그리고 경제발전. 구질구질한 63년 전의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60년 전 이승만 각하가 들여온 가치들을 계승하자는 말 같은데, 63년 전의 물건이나 60년 전의 물건이나 낡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제 친일/항일의 이분법적 구도와 천박하게 이해된 자유주의 및 국가주의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Posted by 데학생
망상의 변주곡2008/05/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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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무리의 쥐떼들은 뉴라이트 대학생들이라는데, 아무리 보아도 이 얼간이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운동권' 들보다 미감이 후진 것 같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인 듯 하다. 그런데 이것들은 자신들이 '뉴' 라이트라는데 특정 방송사에 대한 시비는 한나라당과 조갑제의 주특기 아니였던가?

뉴라이트는 무슨, 그냥 무식하고 천박하고 후진 반동의 똘마니지. 바이트라는 뉴라이트 대학생 웹진을 보니 차라니 우리학교 꼴통 총여학생회의 페미니즘 간증집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매일 토론하고 치고 박으면서도 인정 못받는 좌파 하지 말고 수료증도 주고 지원도 많이 나오는 우파나 할껄 그랬다.
Posted by 데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