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는 이미 진정한 혈통관계로 맺어진 가족국가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민족의 시원을 단군으로 보는 시각은 이미 1898년에 관찰되며(「皇城新聞」, 9월 5일), 그리고 같은 신문의 1905년 사설 ‘國家思想論’에서는 국가를 “一致團結의 血性”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2월 16일). 이러한 시각은 이후 더욱 발전되고 넓게 받아들여지게 되는데, 단군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국가관은「大韓每日申報」,「皇城新聞」그리고「西北學會月報」등지에서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어,「皇城新聞」의 1909년 4월 21일 사설은 단군을 “聖祖” 와 “國祖”로 지칭하여, 단군을 기원으로 한 가족국가관을 제시한다. 다른 예로 「西北學會月報」의 한 기사 “國家論의 槪要(續)”는 국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所謂 民族이라 云者 家의 集合體로 家에 家長이 有과如히 族에도 亦 族長이 宥야 家族이 家長을 崇拜야 此에 服從과 同一의 思想으로 以얏도다. 凡家族은 共同의 始祖로 一族의 長을 崇拜고 其 權에 服從며 族長은 凡家族의 長으로 族 全體를 統御는 地位에 立者라. 此 卽 血族團體라 稱 者라. 國家의 始原은 洋의 東西와 國의 文野를 不問고 可던지 一家一族의 制로 始하야 成고 特히 我邦이 最著야 或은 此를 稱하야 血族的 國家라 稱니…”
가족으로서의 국가, 혹은 가족국가는 보편적인, 따라서 자연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민족형식으로 도입되었으며, 이 개념을 통하여 구체적 민족주의 담론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국가관념 및 가족국가관과 함께 주목할 부분은 일본의 천조대신과 대응적으로 단군이 조선 민족의 조상으로 불리게 된 점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삿사 미츠아키(佐佐充昭, 2000; 2001)의 독창적 연구들은 어떻게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가 일본의 종족적 민족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에 관해 잘 논증하고 있다.
천황의 지위와 권력은 메이지 이전 시대에는 단지 명목적인 것이었다면,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를 통하여 단군에 대한 관심은 극히 적은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천황이 메이지 시기에 새로운 전통으로 “발명” 된 국가종교인 국가 신도의 상징적 중심이 되었듯이, 한국에서도 이에 대응하여 일본의 전통종교에 비견할 만한 무엇인가가 필요하였다는 것이다. “민족 종교”인 단군교(대종교)는 1909년 나철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공포되었는데, 이 때 이들은 이 민족종교가 이미 수천년 전 창설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중광”(重光)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채오병, "민족형식과 민족주의", 2007, 한국사회학 제 41집 4호
이상의 내용은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전후맥락을 설명하자면 조선의 초기 엘리트들은 이미 조선과는 달리 국민국가를 완성한 일본(제국)의 민족주의-국가주의에 강한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이들은 일본에 대항하기 위하여 조선만의 민족주의를 만들지만 '민족' 과 '국민국가' 의 구성요소라는 프레임은 일본의 그것을 그대로 모방한다. 예컨대 F15 전투기를 만들기 싫어 라팔을 만들더라도 날개와 콕핏, 랜딩기어 등의 구성 요소들은 꼭 포함시키는 것이다(물론 모양은 다르지만). 논문에서는 이것을 '이데올로기적 반발, 헤게모니적 인각' 이라고 표현한다. 제국의 이념과 식민지의 이념이 이데올로기적인 내용물은 서로 반대되지만 더 큰 사고의 틀인 헤게모니적 차원에서는 양자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헤게모니적 인각이 가장 잘 나타난 사례가 바로 단군신화이다. 독일 국가학의 이론적 대부인 헤겔에 의하면 국가는 '자연적 측면'(탄생, 핏줄, 관습, 전통 등) 에 입각한 강제조직이다. 따라서 독일 국가학의 영향을 받은 일본은 자신들이 창조한 국민국가를 가족국가의 형태로 설정한다. 즉, 국민이 사회계약을 통하여 국가에 통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혈통을 통해 국가에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혈통의 정점은 바로 메이지 이후 새롭게 정치적 상징으로 부상한 천황이다. 메이지 이전까지는 일반 인민은 천황의 존재조차 모르거나 천황에 대해 민간신앙의 신들과 비슷한 희극적이고 과장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일본의 시조라는 아마테라스 여신(천조대신)에 대한 신화도 보편적이지 않았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들은 국민통합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위한 도구로서 천황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천황으로 혈통이 이어지는 창조신 아마테라스 여신의 신화를 내세워 천황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위치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모든 일본인의 혈통적 시조로서의 천황가를 강조하는 것이다. 직접적 자연성에 바탕을 둔 인륜적 정신인 가족의 형태가 더 큰 인륜으로 확장되는 형태인 가족국가 모델에서 국가의 지배자는 계약을 통해 주권을 위임받은 에이전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질서를 통해 신에게 권위를 위임받은 가부장이 된다. 따라서 지배자로서의 천황은 국민에게 그 정당성을 승인받을 필요가 없으며 가부장의 권위를 통해 일본이라는 가정을 통치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국가 모델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어, 메이지 천황의 시찰 당시 사람들은 메이지 천황에게서 위엄있는 근대군주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애로운 아버지의 시선까지 느꼈다. 이는 국민들의 충성심 진작과 국가의 통합에 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제국 일본 및 서구 열강들의 이권침탈에 골머리를 썩히던 조선의 엘리트들은 일본이 천황을 중심으로 통합된 가족국가 모델을 통해 강한 제국으로 거듭나는 것을 보며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유교국가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아마테라스 여신의 혈통을 강조하기 위한 신토(神道) 의례의 발명 및 국가적 장려와 같은 수단이 불가능하였으며, 역성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은 왕실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혈통적 권위를 내세울 수가 없었다. 요컨대 역성혁명이 발생하지 않고 황실이 유교전통에 매몰되지 않은 일본에서는 자신들의 혈통적 권위를 종교적 차원에서 내세우는 것이 가능하였지만, 자신들이 조선인의 시조이자 혈통적 아버지라고 자처한다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이씨왕조는 그것이 불가능하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시 조선의 일부 엘리트들은 국민통합의 수단으로서 이씨왕조를 버리고 새로운 상징을 발굴해낸다. 그것이 바로 단군이다. 단군은 이론상으로(?) 조선 민족의 혈통적 시조이기 때문에 가족국가의 구심점이 될 수 있으며 또한 '단군민족' 이라는 경계설정이 가능해진다. 아마테라스의 피를 이어받은 민족과 단군의 피를 이어받은 민족은 서로 구분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구분이 가능해질때 양자는 각자의 독자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표 1> 에서 보다시피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구한말과 식민지 시대에 나타난 '민족적 의식' 의 대다수는 일본의 그것들과 일대일로 대응한다. 이는 이러한 '민족적 의식' 들이 그 당시에 민중들 사이에 이미 퍼져 있었다기 보다는 일본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대한 대응으로써 발명 혹은 발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앞에서 간략히 이야기했다시피 일본의 민족주의 역시 서구의 가족국가 모델에서 그 형태를 차용한 것이다.
현재 한국의 중등과정에서 배우는 윤리교과서에는 상당히 위험한 헤겔적인 가족국가관과 단군에 대한 강조가 나타나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시 조선은 자신만이 단군의 직계 후계자라고 내세울만한 주체가 없었기에 일본의 천황제와 같이 혈통적 민족주의가 물화되지는 못하였다는 점이다. 덕분에 대통령 대신 왕검이 통치하는 입헌군주국이 되는 것은 면하였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민족의 화신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민족주의의 광기를 동원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채울 독재자가 나타나기 어렵게 만든다. 2차 대전 당시 천황은 가부장의 권위에 호소하여 신민을 동원하였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붉은악마를 개인을 위해 동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위험성은 상존하는 법. 우리는 그 동안 중등교육과 각종 미디어를 통해 주입되었던 '발명된 민족' 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는 시민적 연대를 통한 사회이지 혈통적 유대를 통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