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강을 맞아 기말과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반나절 과제 모라토리엄을 선포하고 시청으로 나갔다. 작년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역시 분노의 에너지는 슬픔보다 강한 모양이다- 그래도 올해 들어서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최대로 모인 것 같다. 경찰측 추산으로는 5만명, 주최측 추산으로는 15만명이 모였다고 하니 얼추 10만명 내외로 모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작년 촛불정국 당시와 비교하였을 때, 무난하게 모인 숫자라고 할 수 있겠다. 올해 6월 10일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보다는 참여주체들이기는 하다. 촛불 때와는 달리 범야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통해 87년 이후 최대도전연합이 정상적으로 형성될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겠다.
하지만 상기해야 할 점은 87년도의 최대도전연합 형성은 박종철의 사망 자체로 터진 것이 아니라, 사망경위에 대한 은폐기도에 대한 분노로 이루어진 것이며, 또한 이한열의 현장에서의 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따라서 현재의 정세는 87년도와는 분명히 다르다. 게다가 당시 88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도전연합을 포섭할 명백한 동기가 있었던 지배블록과는 달리 현재의 지배블록은 딱히 도전연합을 포섭할만한 동기가 없다. 지배블록 내부의 분화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친박계가 민주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또한 예상대로 청와대는 야권에 대해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으며 자신들의 행동강령 역시 수정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게다가 민주적인 절차적 정당성을 지닌 정부를 중도하차하게 만들 뾰족한 수단과 명분이 모두 없다는 점-아쉽게도, 2MB에 대한 광범위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상당수 있으며 민주주의는 이들까지 대표하여야 하는 체제이다-에서는 정국을 타개할 방법이 더욱 묘연하다. 국회에서의 탄핵소추 발의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게다가, 설사 친박계의 초강수로 탄핵소추가 발의된다 하더라도, 이는 사법의 정치화를 뒤집은 정치의 사법화로의 역편향을 의미한다), 거리에서 이 정부를 하차시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찰스 틸리의 지적대로 동원에서 성공적인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지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특히 중간계급 편향적인 운동의 속성을 고려한다면(어제 광장에 모인 상당수는 정장을 빼입은 회사원들이었다), 이들이 2MB 를 끌어내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만들어내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리가 만무하다.
2MB 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끌어내릴 수 없다면 고민해야 할 문제는 앞으로의 3년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문화과학」과 「한겨레 21」에서 이야기하는, 2MB가 파시즘 X 로 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오버' 임에 분명하지만, 3년간 고민하고 대비해야 할 것은 2MB 이후이다. 2MB 다음으로 올 것은 박근혜의 보나파르티즘인가, 유시민의 보수적 민주주의인가, 제 3의 인물의 파시즘 X인가. 2MB 정부의 헤게모니 상실과 비효율적인 무리한 통치행위, 그리고 거리의 반정치적 정치 사이에 부재하는 정치를 회복할 길은 아직 멀어보인다. 역시 우리가 항상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한 안티테제를 넘어선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문제의식이다. 6월 항쟁 22주년을 맞아 우리는 '독재 세력' 이라는 손쉬운 적이 아닌, 복잡하고 뒤틀린 역사의 미로 속에서 어떤 민주주의를 건설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상기해야 할 점은 87년도의 최대도전연합 형성은 박종철의 사망 자체로 터진 것이 아니라, 사망경위에 대한 은폐기도에 대한 분노로 이루어진 것이며, 또한 이한열의 현장에서의 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따라서 현재의 정세는 87년도와는 분명히 다르다. 게다가 당시 88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도전연합을 포섭할 명백한 동기가 있었던 지배블록과는 달리 현재의 지배블록은 딱히 도전연합을 포섭할만한 동기가 없다. 지배블록 내부의 분화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친박계가 민주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또한 예상대로 청와대는 야권에 대해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으며 자신들의 행동강령 역시 수정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게다가 민주적인 절차적 정당성을 지닌 정부를 중도하차하게 만들 뾰족한 수단과 명분이 모두 없다는 점-아쉽게도, 2MB에 대한 광범위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상당수 있으며 민주주의는 이들까지 대표하여야 하는 체제이다-에서는 정국을 타개할 방법이 더욱 묘연하다. 국회에서의 탄핵소추 발의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게다가, 설사 친박계의 초강수로 탄핵소추가 발의된다 하더라도, 이는 사법의 정치화를 뒤집은 정치의 사법화로의 역편향을 의미한다), 거리에서 이 정부를 하차시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찰스 틸리의 지적대로 동원에서 성공적인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지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특히 중간계급 편향적인 운동의 속성을 고려한다면(어제 광장에 모인 상당수는 정장을 빼입은 회사원들이었다), 이들이 2MB 를 끌어내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만들어내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리가 만무하다.
2MB 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끌어내릴 수 없다면 고민해야 할 문제는 앞으로의 3년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문화과학」과 「한겨레 21」에서 이야기하는, 2MB가 파시즘 X 로 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오버' 임에 분명하지만, 3년간 고민하고 대비해야 할 것은 2MB 이후이다. 2MB 다음으로 올 것은 박근혜의 보나파르티즘인가, 유시민의 보수적 민주주의인가, 제 3의 인물의 파시즘 X인가. 2MB 정부의 헤게모니 상실과 비효율적인 무리한 통치행위, 그리고 거리의 반정치적 정치 사이에 부재하는 정치를 회복할 길은 아직 멀어보인다. 역시 우리가 항상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한 안티테제를 넘어선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문제의식이다. 6월 항쟁 22주년을 맞아 우리는 '독재 세력' 이라는 손쉬운 적이 아닌, 복잡하고 뒤틀린 역사의 미로 속에서 어떤 민주주의를 건설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복잡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