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세상/사회2009/05/31 17:02




1.
 모든 패전트는 권력의 스펙터클을 대중에게 각인시킴으로써 권력의 기의를 학습시킨다. 그리고 권력의 기의를 맛본 대중은 권력의 기표를 찾아 기의와 일치시킨다. 하지만 여기에는 미끄러짐이 존재한다. 근대 일본에서 나타난 천황의 패전트를 분석한 다카시 후지타니의 『화려한 군주』에는 패전트에 대한 당시 대중의 반응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스펙터클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소비한다. 기표는 천황으로 수렴되지만 권력을 상상하는 방식이 각각 다른 것이다.

 2MB 가 국장이라는 화려한 패전트를 통해 만들어내고자 한 권력의 기의와 대중이 읽어낸 권력의 기의 사이에는 탈구조주의적인 미끄러짐이 있다. 금요일의 시청과 연화관에서의 패전트는 매우 전형적이었으며 그만큼 대중도 전형적으로 반응하였다. 마치 메이지 천황의 순행(巡行)을 대하는 당시 대중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있어서 영결식은 국가의 규율에 자신을 맞추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느낀 권력에 대한 느낌을 표출하는 장이었다. 이러한 패전트를 주관한 2MB 정부가 대중에게 질서를 요구하는 것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결국 이 모든 패전트는 공식적으로는 정부의 주도였지만 실제적으로는 노무현의 패전트, 화려한 대통령 노무현의 패전트였다. 죽은 노무현은 영결식을 통해 순행을 실천하였고 대중에게 스스로를 내보였다. 대중은 여기서 노무현의 존재를 새삼 느끼며 국가의 리더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리고 시대정신으로서의 노무현의 삼위일체를 읽어내어 내면에 노무현의 응시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노무현은 내면의 도덕법칙이자 자애로운 아버지이자 정치신념의 준거로서 환원된다.
 



2.
 유시민이 사도 바울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겠지만, 확실한 것은 2MB 는 네로 황제가 되기로 작심하였다는 것이다. 로마의 만신(萬神)을 섬기지 않는 자들에게는 예배의 장소로 콜로세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콜로세움은 곧 2009년 서울의 거리이다.

 콜로세움 밖으로 나와 관중석의 귀족들을 공격하지 않는 한 노예에게 자유란 존재할 수 없다. 새로운 스파르타쿠스가 거리에서 나올 수 있을지도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3.
 촛불과 노무현에 대한 추모열기의 정체성을 이처럼 잘 대변해주는 사진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촛불과 노무현은 모두 태극기라는 기표로 용해 가능하다. 정상국가를 향한 중간계급의 허위적 열망과,  이에 대해 공권력을 투입하여 당신의 국가에 대한 기획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2MB 의 대립은 이 한장의 사진이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싸움은 곧 국민국가의 성격에 대한 규정을 둘러싼 싸움이다. 하지만 양자 중 어느쪽이 승리하더라도 희망은 찾기 힘들다. 중간계급이 꿈꾸는 정상국가는 정치적 수단에 의한 계급의 공존과 전략적 연대가 아닌, 도덕적 당위 혹은 중간계급의 안락한 환상에 기반한 몰계급적인 통합(곧 국가라는 기표로 모든 것을 용해시키는)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2MB 가 꿈꾸는 계급사회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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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의 변주곡2009/05/24 15:34

 노무현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정치적 비판은 하지 않는 것이 당분간 고인에 대한 나의 마지막 예의다. 그리고 사실 노무현이라는, 중간계급의 방향 못잡는 열정을 물화한 주체가 사라진 이후로는 굳이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물고 늘어진다는 것은 별 의미없는 화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이라는 '본체' 가 사라지고 각 개별주체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노무현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현실에 존재하였던 노무현이라는 단일한 본체를 공격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노무현 개인에 대한 비판과 분석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본다. 최장집과 박상훈에게 유시민이 계속 컴플렉스를 가지고 반발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정곡을 찔렀다는 것의 방증 아닐까.
 주목해야 할 것은 노무현의 캐릭터가 아닌, 현상으로서의 그의 탄생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또한 그 스스로가 바꿔놓은 사회적 맥락이며 중간계급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수만명의 그가 모여 만들어낼 사회적 맥락이다. 그리고 현재의 추모열기 역시 하나의 현상이다. 모든 사회적 현상은 대상화되어 분석되어야 한다.
 걱정되는 것은 한국정치의 강렬한 동일시 효과-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으로서, 국민은 정치인을 지지할때 그의 정책을 합리적으로 평가하여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의 감정적 동일시를 통해 선택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열망과 실망의 반복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이 정도면 학습효과를 가질때도 되지 않았을까.
 가뜩이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한국사회의 풍토에서, 그리고 동일시 효과가 빚어내는 미디어 정치의 강세에서 질낮은 언론의 범람 속에서 계속해서 노무현과 같은 '현상' 이 벌어지는 것은 결국 남미식 포퓰리즘으로의 수렴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망자에 대한 예의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있어 더욱 중요한건 살아있는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망자에 의해 산 자의 삶이 규정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노무현을 기억하자. 하지만 그를 마음속에 모시지는 말자.
 
p.s.1. 아마 중간계급이 노무현을 기억하고 소비하는 방식과,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계급이 노무현을 기억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명백히 다를 것이다. 현상적으로는 동일하게 나타나는 추모물결의 뒤에 존재하는 심층심리의 차이를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p.s.2. 재미있는 것은 남미에서는 노무현과 같은 포퓰리즘 정치가 횡행한다는 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인들은 노무현을 유일무이한 현상으로 생각하며 그에게 거대한 가치를 부여한다. 이는 남한 중간계급이 얼마나 자기 외의 세계에 무지하며 자기중심적인 내셔널리즘에 빠져있는지를 방증해준다. 어제 추모식에 등장하였던 거대 태극기와 울려퍼지는 아리랑은 소아병적 내셔널리즘의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노무현과 비슷한 말로를 걸은 브라질의 포퓰리스트 제툴리우 바르가스(http://en.wikipedia.org/wiki/Get%C3%BAlio_Vargas)의 유서 마지막 줄
 
"Serenely, I take my first step on the road to eternity and I leave life to enter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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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의 변주곡2009/05/24 03:23

0.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는 과도할 정도로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굳이 몇 줄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것이다. 내가 할 일은 인간 노무현에 대한 어떠한 감상을 배제한 채, 노무현의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는 것이다. 파토스는 이미 넘칠대로 넘쳤다. 총체적 분석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개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1. 노무현 시대의 종언은 결국 노무현 시대보다 더욱 강렬한 반정치의 정치로 회귀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수단에 의한 갈등해결의 통로를 막아버린 이명박 정권이라는 환경과, 노무현 자신이 만들고 죽음으로서 완성시킨 반정치적 순수성에의 열망의 결합은 결국 거리의 정치라는 형식으로 귀결될 것이다.

 

2. 운동에 의한 정치의 문제점은 사안들을 위계화함으로써 포괄이슈로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노무현에 의해 덮일 여러가지 사안들이 안타깝다. 가버린 사람도 안타깝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여러 미래들이 더 안타깝지 않을까.

 

3. 그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사망이 과거의 일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없기에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노무현의 유산을 계승하는 작업은 곧 실패한 노무현 시대에 대한 분석의 작업이지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환상속의 노무현의 영접이 아니다.

 

4. 노무현의 죽음이 동원하는 시민은 결국 중간계급의 촛불, 노무현의 촛불이다. 이들은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노무현의 목소리를 내면화 함으로써, 즉 노무현을 선택할 당시의 자신의 가치관을 영속화 함으로써 진화없는 동일한 과정의 반복을 연출한다.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분리는 09년 5월 23일 노무현 추모 집회와 민주노총 집회의 분리로 반복되며, 매개가 없는 양자의 단절은 또다시 도덕적 열정에 의해 추동되는 중간계급의 자기만족적 정치, 계급적 증오에 의해 추동되는 노동계급의 파괴적 정치라는 반정치적 정치를 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5. 현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는 결국 살아있는 자들 스스로를 위한 추도이다. 이것은 자연인 노무현이라는 단일 인격체가 아닌, 정치인 노무현에게 투사된 자신들의 욕망과 열정에 대한 인정투쟁이다. 중간계급의 물화된 시대정신인 노무현이 사라짐으로써, 그것도 이명박정권의 검찰수사에 의해 사라짐으로써 중간계급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모욕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중간계급은 노무현을 추모하는 형식을 통해 노무현에게 투사했던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기념하고 인정한다. 급진적으로 자신과 단절할 결단력과 용기가 없는 중간계급에게 있어서 노무현 시대를 청산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노무현에 의한 호명에 응하는 것이 훨씬 쉬운 선택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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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사회학2009/05/14 17:35

1. 코스모스


현대의 삶의 모습을 규정하고 있는 근대는 베버의 고전적 논의에 의하면 지속적인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코저, 1978: 347-348). 이는 불확실성을 최소화 하며, 예측 가능성을 최대화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자 하는 전사회적 노력의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맑스가 예리하게 지적하였다시피 인간은 환경을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는 동시에 인간 스스로가 교육받아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엥겔스, 1989: 21). 따라서 근대화 과정은 사회의 지속적인 합리화라는 한 면으로만 파악될 수 없으며, 근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인간을 ‘근대적 인간형’ 으로 주조해내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의 저자인 나루사와 아키라는 이 저작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접근하고자 한다. 일본은 서구의 근대화가 정점을 향해 치닫던 제국주의시기에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근대국가를 단시간 내에 건설한 국가로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서구에서 수입된 동아시아 근대성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저자의 근대성에 대한 개념화는 베버의 관념과 유사하며, 따라서 근대화 과정이란 곧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은 완전히 배제되어 주술이 코스모스의 유지에 영향을 미칠 여지는 없어지고 모든 것이 세속화되는”(8쪽) 과정에 다름 아니다.


또한 저자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의 특이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근대적 질서의 형성과정이 외국에 비해 현저하게 빠르다. 둘째,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사회의 해체와 재편에 대한 저항이 약했다. 셋째, 군대와 학교가 맡았던 역할이 비교적 컸다. 넷째, ‘질서화’ 가 목적합리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근대적 질서가 사람들에게 내면화 되어 그들의 행동을 지배하였다(12-17 쪽). 이와 더불어 저자에 의하면 일본의 근대적 규율 질서는 서구에서 수입된 요소들로만 구성된 것뿐만 아니라, 전근대 사회에서부터 유래하는 독자적인 사회적 기원을과 혼합된 구조적 복합체이다.


이 저작의 주제인 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 전개과정은 위에서 제시된 문제의식들에 의해 탐구되고 배열되어져 있다. 우선 저작은 근대적 사회질서를 시간, 공간, 신체, 인간관계의 4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접근한다. 각각의 영역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모든 영역은 근대적인 이분법적 도식-청결/부정, 근면/나태, 표준/비표준 등-에 의해 규정되며, 궁극적으로 철장(Iron cage) 과 같이 경직된 사회질서를 만들어낸다. 이에 대한 엘리트 계급과 피지배 계급 모두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결국 강화된 통제에 의해 근본적으로 억압되며, 주체들은 규율 질서에 포섭되어 억압 자체에서 쾌적함을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근대적 규율 질서 속에 안주하게 된다(127-134 쪽).


이어서 저작은 서구와 전통 양자의 다양한 사례들에서 각 영역을 관장하는 도식의 역사적인 기원을 찾는다. 1장에서 다루었던 근대화 ‘학교’ 로서 군대의 역할이 전통사회의 규율질서에서는 미비하였다는 점이 흥미로우며, 선종의 규율에 대한 분석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제국군대의 규율 및 정신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이와 같은 저자의 접근은 질서와 규율로 촘촘하게 얽혀있는
코스모스를 창조해낸 일본의 근대를 현실적으로 재현하며 동시에 근대성의 억압을 폭로한다. 특히 일본 전통에 존재하는 근대 규율의 요소들은 그것들이 실제 국가의 근대화 정책에 반영된 기작이 불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함의를 지닌다.


2. 코스모스 너머 : 주체와 관점들


저자의 연구는 근대화가 지닌 억압적인 이면을 폭로함과 동시에 객관적인 시각에서 근대화에 따른 사회적 질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풍부한 자료를 통해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본의 근대적 질서가 순수하게 서구에서 수입한 것만이 아닌, 자생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은 반(反) 오리엔탈리즘적인 함의를 포함한다. 이는 저자의 근대성 비판과는 배치되는 지점이지만, 맑스주의 진영에서마저 ‘아시아적 생산양식’ 이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미발전성’ 에 대한 편견(호스톤, 1991: 167-228)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연구결과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목적론적인 독해법이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이 저작은 일본의 독자적인 ‘문명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방식의 독해가 가능하다. 저자는 지속적으로 ‘문명국’ 이 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근대화에 접근하고 있다.


근대화 과정을 문명화의 관점에서 다룬 대표적인 연구로는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이 있다. 『문명화 과정』 은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교본으로 삼았던 서구의 규범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문명화된’ 행동의 성립은 서구사회가 ‘국가들’ 로 조직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엘리아스, 1996: 49). 엘리아스에 의하면 ‘문명’ 개념의 전신인
시빌리테(Civilité) 개념이 고유한 특성과 기능을 얻은 것은 기사사회가 붕괴되고 가톨릭 교회의 통일이 해체되던 16세기 후반이며, 이러한 개념의 도입은 수치심에 대한 불쾌감을 유발하여 ‘문명화됨’ 과 ‘미개함’ 의 이항구도를 만들어내었다(엘리아스, 1996: 171-181).


수치심에 대한 불쾌감을 핵심적 요소로 삼는 문명화는 서구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의 압력하에
기능적 분화가 다수의 사람들을 서로 의존하게 만드는 곳, 물리적 폭력의 독점이 감정을 배제한 협동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필수적으로 만드는 곳, 그리고 타인의 행동과 의도를 끊임없이 계산하고 예상할 것을 요구하는 기능들이 생겨나는 곳에는 어디서나 문명화 과정이 발견된다(엘리아스, 1996; 2: 332). 저자 역시 무가(武家) 사회 및 공가(公家) 사회의 규율에 대한 연구는 엘리아스가 지적한 마지막 요건의 관점에서 수행하였고,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272-273 쪽). 그렇기에 저자와 엘리아스의 연구는 각각 시공간이 다르지만 유사한 근대화의 유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의 연구는 엘리아스의 연구에 비해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 II』 의 전 페이지를 할애하여 질서를 형성하는 주체들의 형성과정과 주체들이 질서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 모두를 세심하게 추적하고 있다. 반면 저자의 연구는 자료수집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포괄하는 문명화의 모습은 『문명화 과정 I』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그치고 있으며, 저자가 스스로 엘리아스의 연구와 비교하며 지적하는 일본적 근대화의 특수성 역시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규율을 도입하는 주체로서의 국가가 등장함에도 국가의 행동에 대한 세밀한 구조적 분석 없이 현상의 나열 위주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와 더불어 엘리아스의 연구 역시 국가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하는 ‘문명화’ 는 개인적인 단위에서만 일어나며 사회 및 국가와의 상호작용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Gorski, 1993: 270).


따라서 저자가 엘리아스에게 상당부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본 저작의 후속 연구에서는 엘리아스가 수행한 연구를 포함하는 것은 물론, 그가 다루지 못한 지점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포괄할 것이 요망된다. 국가와 사회의 “규율혁명(Disciplinary Revolution)” 을 통한 상호작용을 강조하며 규율혁명의 발생 여부와 국가의 경제적 지위에 의해 다르게 나타나는 근대적 국가 형태들을 제시하는 Gorski 의 연구(Gorski, 1993: 304)는 본 저작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유용한 전망을 제공해준다. 또한 Gorski 의 연구는 본 저작이 근대적 사회질서라는 이름으로 동질적인 것으로 묶은 규율 질서에 대해서도 그것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발현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규율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제시한다(Gorski, 1993: 271).


그리고 이 저작은 국가권력의 변화에 주목하지만 경제체제의 변화 및 작동에는 그리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도시사회화와 규제를 다루는 장에서 억압적인 신분질서와 무한한 욕망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양립불가능성을 논하는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주었음에도(219 쪽), 본문의 다른 부분에서는 경제의 역할을 따로 언급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근대화의 거대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맑스의 논의는 근대성을 논하는 데에 있어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분석이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함을 말해준다(맑스, 2007: 51-88). 일본의 근대화 과정 역시 서구의 ‘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 혹은 ‘자유무역 제국주의(Free-trade Imperialism)' 에 대한 대응이자 모방으로써 이루어진 만큼, 이러한 경향을 낳고 촉진한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은 근대적 질서에 의해 변화하는 동시에 근대화 과정을 조율하는 독자적 영역으로서의 경제에 대한 주목을 요청한다.


또한 이 저작에서 나타는 국가이론, 경제관의 결여와 더불어 저자가 추가적인 연구를 수행하여야 할 지점은 오히려 Goski 가 엘리아스가 그것에 지나치게 매몰되었다고 비판한 개인의 멘탈리티 영역이다. 저작 전반에 걸쳐 근대적 사회질서가 부과하는 규율을 받아들이는 주체들의 반응이 자주 인용되고 있음에도, 대부분 단편적인 인상비평이거나 기작에 대한 증명이 결여된 표면적 반응 위주에 그치고 있다. 특히 근대적 시간의 형성을 다루는 데에 있어 테일러리즘의 심리적 문제(그람시, 1999: 371-373)를 짚고 넘어가지 않는 것은 상당히 의아하다. 근대성의 억압적 측면에 주목하는 저자의 관점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근대화 과정이 주체들을 억압하는 기작과 그 억압의 심리적 결과가 명확하게 제시가 되어야 함에도, 저자가 이 문제에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는 점은 저자의 목소리를 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근대화와 문명화에 대한 맑스와 프로이트의 연구는 이 저작이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많은 유용한 설명을 제공한다. 맑스의 소외에 대한 논의(맑스, 2006: 82-104)는 노동과정을 표준화 시키며 고용주의 의도대로 규율하는 근대화가 단순히 노동자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넘어 노동자의 멘탈리티 및 미래의 상태를 예측하는 데에까지 이르고 있다. 근대적 형태의 공장에서 초단위로 규율되는 시간과 작업공정은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케 함으로써 소외를 유발하며, 이는 결국 자연과 유적 존재로서 인간 고유의 활동적 기능으로부터의 소외를 야기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강조한 근대성의 억압적 측면은 오히려 저자의 연구보다 맑스의 연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저자가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상징적 대비-쾌와 불쾌, 청결과 더러움, 정과 부정 등-들은 정신분석학적 분석이 병행된다면 더욱 풍성한 연구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엘리아스 역시 상징적 대비를 강조하며 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지만 계보학적 방법에 치중한 나머지, 근대성 속에서 성립하는 상징적 대비의 심상과 작동기작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름다움과 청결과 질서는 문명의 요구 가운데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추구는 단순한 유용성 이상의 무언가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문명은 인류를 리비도적 유대로 묶인 공동체로 통합하며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에로스의 사회적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프로이트, 1997: 289-341). 저작의 인간관계의 변화에 대한 장(118-128 쪽) 역시 문명의 억압에 의한 신경증 및 사회에 의해 학습된 초자아라는 개념을 도입한다면 훨씬 풍성한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문제의식과 그 결과물은 상당히 만족스럽지만, 근대의 코스모스를 온전히 재현하기에는 우주에 구멍이 뚫린 부분이 많다. 물론 일본적 사회질서의 기원에 대한 계보학적 증명이 저작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이 저작의 연구성과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저자 자신이 근대성이라는 문제에의 천착과 그 극복을 강하게 주장한 만큼 구체적 자료를 근대라는 역사적 흐름과 연결시킬 수 있는 사회과학적인 분석이 추가되어야만 저자의 연구가 완전해진다고 할 수 있겠다.


3. 코스모스의 내부 : 격동의 근대


앞에서 저작의 이론적 측면에 대해 검토하였다. 요약하자면 저자의 연구는 충분한 실증적 자료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이론의 부족으로 인해 문제의식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다른 연구들의 실증적 자료를 참고하여 앞에서 언급한 이론적 측면을 보완하는 자료들을 검토함과 동시에 저작에 나타나 있는 주장들의 실증적 타당성을 함께 검토할 것이다. 특히 저작에서 묘사하고 있는 질서형성의 과정이 과도하게 단순하다는 지적을 중심으로 하여 실증적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저작의 문제의식을 확장시키고 좀 더 심화된 독서에 도움이 되는 길을 열고자 한다.


저자가 상당한 분량의 지면을 할애하여 연구를 했다시피 메이지 유신 이후의 사회질서와 도쿠가와 막부 시기의 사회질서 사이에는 분명한 연속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저자는 두 개의 질서의 외형적 상동성을 규명하는 것에 집중하여 두 개의 질서가 연결되는 고리의 형성과정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의 주도세력인 사무라이 계급은 도쿠가와 막부의 사회구조를 특징지었던 병농분리제에 의하여 관료층으로 재편되었던 존재이며 이들에 의해 관료주의적 지배이념이 정당화 되고, 이러한 이념이 정당화 하려고 하였던 관료제적 지배기구의 인적 구성이 유신 이후 국가와의 인적 연속성을 지닌다고 하였을 때(박영재 외, 1996: 3), 이들을 질서의 재생산을 담당한 주체이자 유신 이전과 이후의 가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유신 이후 판임관급의 중하층 관료의 경우 구 막부 출신의 관료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였다. 막부 말기 양학(洋學)을 통해 서구의 기술을 익히고 막정개혁의 경험을 가진 이들 기술관료와 실무관료들이 부국강병정책을 적극 추진하였던 오오쿠보 정권의 강력한 3성체제(三省體制 : 내무성, 대장성, 공부성) 내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며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였다(박영재 외, 1996: 48). 물론 이들의 일천한 경험과 단편적 지식, 무엇보다도 미성숙한 국내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식산흥정책과 같은 서구산업의 외형적 이식은 실패하였지만, 저자가 언급하는 미시적 차원에서의 규율화는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기존 사회의 규율을 기반으로 하여 성공하였다고 짐작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규율의 내용물이 무가사회의 규율에서 곧바로 유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17세기 후기에 이르면 전쟁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 무사의 긴장감이 사라진데다가, 경제가 안정되고 사치풍조가 만연함에 따라 무사들은 상권을 장악한 상인들에게 경제력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 무사들에게 ‘무사다운 기풍’ 이 남아있을 리는 만무하였으며(구태훈·박기수, 2007: 111-114), 존재하지 않는 무가사회의 규율이 전사회로 확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사풍(士風)을 상실한 무사들에 대한 무가사회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가 자신들의 직분을 구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무(武)의 재발견을 촉구하였고(구태훈·박기수, 2007: 123), 그것이 사문화된 무가사회의 규율을 되살려낸 요인이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무가사회 내부의 변화는 고려하지 않은 채 명시화된 규범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불충분한 편이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을 추가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강조하는 선종의 청규(淸規)의 경우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사회질서와의 연결고리를 찾기가 무가사회의 규율보다 한층 어렵다는 것이다. 청규와 같은 근세 불교에서의 계율운동은 지닌을 거치며 계율주의와 민중구제의 결합이라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이는 후에 지운존쟈에 의해 민중적 계율주의로 거듭나게 된다. 사회의 발전에 따른 제 모순의 전개에 대응한 농공상(農工商) 민중의 존재 형태의 변용과 민중사상의 변천에 응하면서 본격적인 부흥을 이룬다. 하지만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으로 인한 보시, 공양료의 변화는 사찰의 지배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그들을 경제적 지배층으로 행세하게 만들었다(야마구치, 2001: 210-213).


이는 과연 청규가 사찰 내부에서 어느 정도의 위하력(爲下力)을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지점이다. 실제로 진언종(眞言宗)으로부터 파생된 슈겐도의 경우, 권위를 얻게 되자 입산 수도자들은 금욕주의를 버리고 가정을 갖고 육식을 하였다. 또한 입산수도의 목적도 개인의 신비주의적 체험이나 참회를 위한 것에서 비금욕적인 속세의 사람들을 치료해주기 위한 것으로 변했다(젠슨, 2006: 329).


그렇지만 청규를 비롯한 선종의 사상이 근대로 이어지는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선불교의 보급에 앞장선 선승들은 속세의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한자가 아닌 이해하기 쉬운 일본어로 글을 썼다. 이시다 바이간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심학(心學)은 내면의 태도를 바로 하고 정신을 집중하면 모든 상거래가 해탈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학(學)을 특정 계급의 지적활동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인간성을 연구하는 도전으로 간주하였으며, 따라서 이러한 보편성 위에서 상인계급은 그들만의 윤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후에 메이지 관료들에 의해 심학은 금지되었지만 이는 서민들에게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계산을 억제하려 애썼으며 사회 전체의 가치를 일치시키는 방법을 제공하였다(젠슨, 2006: 331-333). 저작은 상인 계급의 사치를 법으로 규제하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지만(218-219 쪽) 심학의 영향에 의한 자발적 규제 역시 충분히 조명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이는 계산에 의해 형성된 궁정문화와는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으며 양자의 차이를 규명하는 것은 추후에 저자에게 넘겨진 과제일 것이다.


또한 주목하여야 할 지점은 저자가 결과론적으로 실패하였기 때문에 ‘소동’ 이라고 간주하는 저항의 문제이다. 저자에 의하면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일탈과 저항은 결국 근대적 사회질서의 좌표축 안에 고스란히 수용되는 것이다(128 쪽). 이는 후쿠자와 유키치와 같이 ‘문명’ 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 의 불가피성과 가치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자들에게는 적절한 지적이 될 수 있겠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근대적 사회질서에 대한 거부에 대해서는 그것이 단순히 실패하였다고 하여 근대에 포섭되었다고 간주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메이지 정부가 징병제를 도입하는 1873~74년에 성난 군중은 16차례나 폭동을 일으켜 수많은 병적보관소를 공격해 파괴했다. 또한 의무교육이 도입될 당시 초등학교의 재정은 국세인 재산세에 부과되는 10%의 지방세로 충당되었는데, 1870년대에 성난 납세자들은 폭동을 일으켜 주로 방화(放火)를 통해 적어도 학교 2천 곳을 파괴했다(고든, 2005: 139-142). 이러한 대규모의 저항을 단순히 ‘소동’ 이라고 치부하기도 무리가 있을뿐더러, 집합행동이 원자적 개인들의 반발이 아닌 조직에 기반한 저항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이러한 저항이 단순한 실패로 돌아갔다고 보기도 힘들다. 집합행동은 자신들의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며, 따라서 근대적 사회질서에 대한 거부는 곧 근대적 사회질서의 좌표축 외에 있는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스카치폴, 1986: 304-306).


군대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상식적이면서도 치밀한 실증적 자료를 통해 뒷받침 되고 있다. 이 저작에서는 군대가 일본인들의 신체와 정신을 규율하는 핵심적 기제 중 하나로 작동한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군대와 사회 사이의 관계는 훨씬 복잡한 관계를 보인다. 당시 육군을 대표하는 군인 정치가의 한 사람이던 우가키 가즈시게는 사회질서 형태와 군대 조직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상호관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일본의 군대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요시다, 2005: 28-30).


이와 더불어 저자가 강조하는 ‘인간개조’ 의 기제로서의 군대의 효용 역시 실제에 비해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우선 군부가 의식적으로 추진하였던 군대를 통한 언어의 표준화 자체가 간단하게 달성될 수 없었다. 예컨대 오사카의 보병 제 8연대에서는 하사관 지원자가 적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부대로부터 하사관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1921년 동 연대에 입영한 오노 반장은 도호쿠 출신의 군조였는데 사투리와 도호쿠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아 사병들이 지속적으로 곤란을 겪었다는 기록이 있다(요시다, 2005: 45). 또한 양식에 대한 병사의 반발 역시 매우 강하였으며, 근대 일본이 경험한 최초의 대외전쟁인 청일전쟁 때에도 보급업무에 종사한 군인들 대부분은 짚신을 신고 있었다. 당시 가나자와의 보병 제7연대가 사흘간 실시한 종일 행군에서 각각 1,338명 중 687명, 1,327명 중 527명이나 되는 병사가 구두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 이러한 경향은 메이지 이후의 다이쇼 시기에 들어서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미완의 문제로 남았다(요시다, 2005: 60-62). 식성과 구두로 대표되는, 신체 규율에 대한 병사들의 부적응은 1864년 10월 8일자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관찰자는 일본 군인들의 행진 모습이 전혀 숙달되지 않은 채 자신이 보조를 잘 맞추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언제나 앞에 있는 병사의 발을 보고 있기 때문에 전혀 군인답게 보이지 않는다고 서술하고 있다(유모토, 2004: 370-371).


요약하자면 저자가 저작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의 일부분은 다양한 자료를 검토한다면 과도한 단순화라고 간주할 수 있다. 관찰의 이론의존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규율이라는 근대의 한 면만을 표현하는 자료들 위주로 수집하였기에, 그리고 그러한 쪽으로만 해석하였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검토들 역시 저작에서 표현하고 있는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한 측면도 있으며, 저작에 나타나는 자료들 역시 엄연한 역사적 사실들이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 얼굴의 근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근대 내부에 있는 다양한 흐름들과 그 역동성을 파악하는 일이 될 것이다.


4. 카오스 : 질주하는 근대


저자는 본문을 통틀어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전근대와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근대를 대비시키고 있다. 즉, 저자에게 있어서 근대란 철저히 규율권력에 의해서 통제되는, 억압적이면서도 완벽하게 조화로운 코스모스이다. 하지만 근대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시적 차원에서의 코스모스와 거시적 차원에서 카오스를 구분하지 않은 채 근대성 일반을 코스모스로 규정하는 것은 이념형과 현실간의 괴리를 무시하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성이 일반적 코스모스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현실태가 카오스일 때, 현실을 다루는 역사서로서의 저작은 후자의 측면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근대성에 대한 데이비드 하비의 논의는 저자가 미처 다루지 못한 근대성과 근대사회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하비에 의하면 근대성 역시 전근대성과 탈근대성과 마찬가지로 분절성, 순간성, 불연속, 혼란적 변화 상황이 연속적으로 관찰된다(하비, 1994: 71). 또한 근대화는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리듬을 끊임없이 파괴시키며, 모더니즘은 덧없고 분절적인 세계에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하비, 1994: 267). 이는 근대성이라는 것이 결코 하나의 단일한 실체로 정의될 수 없음을 말해주며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말해준다.


따라서 저자가 정적이고 억압적으로 묘사한 근대적 질서는 근대라는 동전의 한 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의 또 다른 면에는 하비가 묘사한 혼돈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근대성이 낳은 문제점을 열거하며 그것에서 해방될 것을 주문하는 것은 다소 무기력해 보인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자칫 근대에서 근대로 탈주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특히 부정적인 것의 양가성을 무시한 채 이분법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근대적 도식 자체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매우 예리하다. 물론 저자 역시 근대의 양가성에 대해서는 다소 미흡해 보이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평등의 기제로서의 국민개병제와 국민교육의 기능 역시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 저작 역시 저자가 비판하였던, 근대적 좌표축 내부에 포섭되는 ‘소동’ 에 그칠 수도 있다.


이후의 연구에서는 앞에서 언급하였던 분석적 문제, 근대성 자체의 양가성 및 문명론에 대한 일반론적 입장을 보강하여야겠지만 이 저작에서 보여준 성실한 자료수집 자세와 근대성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은 저작의 몇몇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다음 연구를 기꺼이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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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데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