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의 변주곡2009/05/24 03:23

0.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는 과도할 정도로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굳이 몇 줄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것이다. 내가 할 일은 인간 노무현에 대한 어떠한 감상을 배제한 채, 노무현의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는 것이다. 파토스는 이미 넘칠대로 넘쳤다. 총체적 분석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개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1. 노무현 시대의 종언은 결국 노무현 시대보다 더욱 강렬한 반정치의 정치로 회귀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수단에 의한 갈등해결의 통로를 막아버린 이명박 정권이라는 환경과, 노무현 자신이 만들고 죽음으로서 완성시킨 반정치적 순수성에의 열망의 결합은 결국 거리의 정치라는 형식으로 귀결될 것이다.

 

2. 운동에 의한 정치의 문제점은 사안들을 위계화함으로써 포괄이슈로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노무현에 의해 덮일 여러가지 사안들이 안타깝다. 가버린 사람도 안타깝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여러 미래들이 더 안타깝지 않을까.

 

3. 그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사망이 과거의 일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없기에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노무현의 유산을 계승하는 작업은 곧 실패한 노무현 시대에 대한 분석의 작업이지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환상속의 노무현의 영접이 아니다.

 

4. 노무현의 죽음이 동원하는 시민은 결국 중간계급의 촛불, 노무현의 촛불이다. 이들은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노무현의 목소리를 내면화 함으로써, 즉 노무현을 선택할 당시의 자신의 가치관을 영속화 함으로써 진화없는 동일한 과정의 반복을 연출한다.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분리는 09년 5월 23일 노무현 추모 집회와 민주노총 집회의 분리로 반복되며, 매개가 없는 양자의 단절은 또다시 도덕적 열정에 의해 추동되는 중간계급의 자기만족적 정치, 계급적 증오에 의해 추동되는 노동계급의 파괴적 정치라는 반정치적 정치를 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5. 현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는 결국 살아있는 자들 스스로를 위한 추도이다. 이것은 자연인 노무현이라는 단일 인격체가 아닌, 정치인 노무현에게 투사된 자신들의 욕망과 열정에 대한 인정투쟁이다. 중간계급의 물화된 시대정신인 노무현이 사라짐으로써, 그것도 이명박정권의 검찰수사에 의해 사라짐으로써 중간계급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모욕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중간계급은 노무현을 추모하는 형식을 통해 노무현에게 투사했던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기념하고 인정한다. 급진적으로 자신과 단절할 결단력과 용기가 없는 중간계급에게 있어서 노무현 시대를 청산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노무현에 의한 호명에 응하는 것이 훨씬 쉬운 선택이였을 것이다.

Posted by 데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