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세상/사회2008/11/17 23:08



 안녕하세요, 근영양이 스크린에 데뷔를 하였을 때부터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어느 대학생입니다. 입시에 따른 비난들로 마음고생을 하였지만 꿋꿋이 학교생활과 연기를 멋지게 병행하고 있는 근영양에게 항상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근영양이 출연한 영화들도 다 보지 않은 불성실하고 게으른 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색한 편지를 쓰는 것은 다름이 아닌 근영양에게 쏟아지는 원색적 비난들 때문입니다. 이 광폭하고 거대한 익명의 악의 앞에서 자칫 마음에 큰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선 근영양에게 최대한의 위로를 보냅니다. 제가 근영양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말은 근영양의 외조부께서는 결코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으셨으며 근영양의 선행에 따스한 감동을 받은 저와 같은 사람들도 많다는 점입니다. 다소 재미없고 딱딱한 편지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편지를 보는 다른 사람들이 근영양의 외조부님과 근영양의 선행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근영양의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저는 근영양이 받고 있는 비난이 저에게 돌려진다고 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들은 근영양의 외조부님이 한국전쟁 직후 빨치산 활동을 한 것을 빌미로 비방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남북이 서로의 정치체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벌인, 국민국가 수립을 위한 정초적(正初的) 전쟁이었으며 그 와중에서 수많은 소중한 목숨들이 각자의 신념을 위해, 그리고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 사라져 갔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전쟁에서 남한과 북한은 모두 서로에게 폭력적이었으며 따라서 어느 진영에 가담했었느냐는 선악을 판단하는 손쉬운 잣대가 될 수 없음은 당연지사 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편견과는 달리 당시의 빨치산은 남한의 사회모순에 적극적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안적인 국민국가 수립을 주장하였던 세력이었습니다. 아마 극우파 이승만 전 대통령 대신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이 정권을 잡았더라면 근영양의 외조부님의 활동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도 조금은 달라져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서울대학교 총장으로까지 거론되었던 김태준 선생이 빨치산 활동을 펼치다가 총살을 당한 비극적 역사 뒤에는 당시 미군정의 노골적인 좌익 탄압에 맞서 혁명적 지식인들이 빨치산이라는 고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습니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국가를 위한 그들의 열망 자체는 국군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전쟁의 와중에 사라져간 목숨들과 전쟁으로부터 파생된,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목숨들은 단순한 이념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면에서 보았을 때 굳이 해석학과 같은 복잡한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조정래 씨의 소설 <태백산맥> 은 이 당시의 정국을 바라보는 법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폭풍전야의 정국 속에서 청교도적인 엄격함을 고수하는 빨치산 염상진과 민족의 독립을 합리적 자세로 고민하는 김범우,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하섭 등의 갈등과 고뇌는 그 자체로 경탄할 만한 인물상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마 근영양의 외조부께서 그토록 통일운동에 매진하셨던 것은 저들이 말한 ‘전라도 빨갱이’ 의 피가 아닌, 외조부께서 믿으셨던 인간해방의 수단으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이 그분을 이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격동의 역사가 지나간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태백산맥> 의 등장인물들의 사상적 오류를 지적할 수 있고, 역시 근영양의 외조부 역시 완벽하게 정확한 운동만을 하지는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장에서 산화해간 군인들과 그들에 대항하였던 빨치산들이 공통적으로 품었던 열망-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통일국가에 대한 신념-은 오늘날에도 그 빛을 잃지 않았으며 그것을 추구했던 사람들 역시 실천 방법을 떠나서 최대한의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통일운동의 방법론에는 이견이 있지만 모든 탄압을 받으면서도 한 평생 꿋꿋한 길을 걸으셨던 근영양의 외조부님에 대한 존경의 념을 보냅니다.

 우리가 문학과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염상진은 틀렸고 김범우가 옳았어’ 식의 교훈이 아닌, 모두가 각자의 동기를 가지고 참여하는 위대하고 격렬한 역사에 대해 최대한의 존경심과 배려심을 가지고 보는 자세이며 근영양의 외조부님 역시 근영양에게 교조적인 사회주의 이념이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향한 삶의 자세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기에 근영양이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선행을 펼칠 수 있으며 부모님 역시 근영양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전해주시려 노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선행을 펼치는 근영양은 이미 외조부님이 살아가셨던 삶의 목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직도 근영양의 선행을 필요로 하는 이 눈물의 골짜기에서 근영양의 웃음과 선행은 영혼없는 세상의 영혼이요, 눈물 없는 세상의 눈물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근영양에게 외조부님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비난을 하는 것은 스스로가 영혼과 눈물이 없는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는 동물은 외부의 반응에 대해 즉각적이고 한정적인 대응밖에 할 줄 모르지만 인간만은 자신의 반응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치고 그 이미지가 다시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올 줄 생각하여 대응을 한다고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근영양의 선행에 대해 전라도, 빨치산, 통일운동 등의 어휘만을 보고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견공(犬公)들에 대해서는 하루 빨리 잊어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근영양이 밝고 열심히, 그리고 따뜻한 인간의 마음을 잊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지켜볼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근영양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 근영양에게 비난을 퍼붓는 미성숙한 사람들보다는 근영양에게서 희망을 얻고 말없이 근영양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을 것입니다. 하루빨리 근영양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비난들이 그치고 근영양이 계속 그 아름다운 빛을 이 우울한 사회의 곳곳에 환하게 비추어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어느 주책없는 늙은 대학생 팬이-

Posted by 데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