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세상/사회2008/08/17 02:31

 1945년 8월 15일이 아닌, 1948년 8월 15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광복절’ 이 아닌 ‘건국절’ 이라는 명칭에 익숙한 사람은 아예 극소수에 불과하다. 의도적으로 건국이라는 표현을 각인시키려 애쓰는 것 자체가 집단의 기억 속에서 광복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가 강고하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하지만 뉴라이트 학계를 등에 업은 2MB 정부는 시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기 위하여 건국 60주년을 강조한 8.15 기념행사를 강행하였다. 그 동안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대표되는 뉴라이트 학계의 주장과 최근 건국절과 관련된 이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이들이 멀쩡한 광복절을 놓아두고 건국절 이라는 생소한 명칭에 집착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일단 이들은 고등교육을 받았고 고도의 지적 훈련을 거친 학자 집단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해석투쟁과 집단기억의 선별 작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10년의 민주화 정부를 명분만 내세운 무능한 세력으로 낙인찍은 ‘잃어버린 10년’ 이라는 레토릭은 이들의 최고 성공작이다. 그렇지만 안티테제만으로는 효과적인 통치를 위한 헤게모니 구축이 힘든 법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국민들의 세계관 자체를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도록 개조할 필요가 있었고, ‘경제 대통령’ 이라는 구호로 현재를 개조한 이들이 눈을 돌릴 곳은 세계관의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과거의 영역이다. 그리고 ‘경제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천박한 경제동물 및 신실한 국가주의자의 이중적 면모-위대한 박정희는 시장주의자였을까-를 과시하는 이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경제성장을 통한 강대국의 건설’ 이다.

 2MB의 출신지역에 대한 논란이 보여주듯 내셔널리즘이 유독 강한 한국에서 일본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는 반동 세력들에게 있어 하나의 원죄에 가까웠다. 기존의 올드 라이트가 이 논란을 회피하는 데에 급급하였던 반면, 경제를 내세우며 헤게모니를 어느 정도 장악한 뉴라이트는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이 논란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즉, 친일 경력을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친일도 정당한 행위였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다.

 물론 건국절 이라는 명칭 자체에 친일적 요소가 반영된 것은 아니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1948년 8월 15일 법적으로 건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엄연히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이 광복절을 대체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뒤에 깔려 있는 의도가 정치적으로 불순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앞에서 지적하였다시피 뉴라이트 세력의 지상목표는 경제발전을 통한 강대국의 건설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실력양성론과 매우 흡사하다. 그리고 이들의 대다수가 본격적인 동원이 이루어졌던 30년대 들어 변절하였다는 점은 더욱 시사적이다. 안병직 교수를 위시한 뉴라이트 세력의 상당수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미제와 결전을 벌일 수 있는 자주적인 통일강국을 건설하고자 하였던 NL(National Liberty : 민족자주) 및 주사파 출신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은 결과론적으로 남한이 더욱 강대국이 되자 미련 없이 김일성을 버리고 박정희로 방법론을 갈아탔을 뿐이다.

 이들이 건국절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실시한 이영훈 교수와의 대담에서 그는 이승만은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였기에 건국을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결과론적 사고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승만이 건설한 국가가 현재 위대한 것과 이승만이 건설한 국가가 위대한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게다가 현재의 정부가 아무리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도 이승만 정부와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요컨대 건국절 이라는 명칭의 뒤에는 강한 국가에 대한 도착증적인 욕망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뉴라이트 세력의 이론 속에서 친일 경력은 부국강병 및 실력양성을 위한 선각자의 솔선수범이 되며 분단국가 수립은 ‘위대한 경제발전이 운명 지워진’ 국가를 건설한 선견지명이 된다. 그리고 여기에 민중의 희생과 사상의 실종에 대한 비판이 자리 잡을 곳은 없다.

 그렇기에 건국절에 대한 비판은 이들의 천박함과 성찰 없음에 대한 비판이 되어야지 ‘친일파’ 라는 비난이 되어서는 안 된다. 뉴라이트는 스탈린 시절에 살았다면 아내와 자식이 수용소에 끌려갔음에도 스탈린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던 몰로토프와 같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좌파와 우파, 그리고 사람들의 희생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경제수치로 대변되는 전체의 성장만이 중요할 뿐이다.

 8월 15일 제 60주년 건국절에서 2MB 가 행한 연설은 2MB를 위시한 뉴라이트 세력의 사상의 정수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단결과 통합, 그리고 경제발전. 구질구질한 63년 전의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60년 전 이승만 각하가 들여온 가치들을 계승하자는 말 같은데, 63년 전의 물건이나 60년 전의 물건이나 낡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제 친일/항일의 이분법적 구도와 천박하게 이해된 자유주의 및 국가주의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Posted by 데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