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국제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상징적인 계기들로 작용할 것 같다. 이미 '세계의 굴뚝' 으로서 세계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확립한 중국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단순한 경제 강국을 넘어선, 패권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려고 시도할 것이며 그 조짐은 이미 다방면에서 나타다고 있다.
물론 중국의 이러한 시도는 미국의 헤게모니에 비하면 초라한, 절반의 성공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홉스봄의 신간 <폭력의 시대> 에서 지적하다시피, 미국의 헤게모니는 그것이 소비에트에 비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 다른 강대국들의 양해에 의해 구축된 것이다. 그리고 구미의 선진국들은 이미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중국에 대해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세계는 미국과 중국 중 어느쪽의 악덕을 더 참을 수 있을까.
하지만 유럽연합은 푸틴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서 중국을 한시적으로 어느정도의 패권국가로 인정해줄 것이다. 그리고 중국 패권의 한계는 거기까지이다. 세력균형을 맞추기 위한 물질적 추 이상을 넘어선, 아편전쟁 이전의 정신적 종주국까지 자처하는 것은 명약관화한 언감생심이다. 이미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담론이 '역사의 종말' 까지 선언한 현재 세계에서 중화주의가 전 세계인들의 가치기준이 될 가능성은 요원해보인다.
이번주 시사 IN 에서 서술하고 있는 중국의 올림픽 준비 내용을 보고 있자면 중국 역시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들은 미국에 맞서 중화블록을 건설하는 헤게모니 투쟁보다는 자신들의 중화를 정복하였던 서구적 근대의 '힘' 만을 추구하기로 한 것 같다. 인권문제를 이유로 스필버그가 사퇴한 후 올림픽 개막식 연출을 담당한 장예모가 '황후화' 에서 보여주었던 것은 중화의 인문이 아닌, 서구의 시선으로 본 봉건적 동양 판타지의 스펙터클 뿐이었다. 이것은 상징적이다.
장예모와 왕가위 감독의 영화 및 현대 중국 문학에서 나타나는, 서구화된 근대 상하이라는 대체적 공간에 대한 노스탤지어-최소한 엄격한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는 서구적인 것을 현재 속에서 드러내놓고 욕망할 수 없었으니-는 이제 국가가 주도하는 한편의 거대한 연극 속에서 그 가면을 벗는다. 서구화는 둘째 치더라도, 스터디움 건축을 위해 아무런 보상 없이 주민들을 철거시키는 그 무지막지함 속에 노골적인 힘에 대한 갈망이라는 중국 패권의 본질이 잘 나타나 있다.
평소 함축된 고사성어로 외교 정책을 암시하던 중화적 인문의 세련된과 섬세함은 아편전쟁의 설욕을 향한 세력 과시의 일념에 압살되고 말았다. 유럽의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거대한 스케일의 건축물과 서구의 예술가들이 만든 대형 전시물 속에서는 '세계의 굴뚝' 만이 보일뿐 동아시아의 문화 공장을 담당했던 깊은 '중화' 는 찾아볼 수 가 없다. 이러한 스펙터클은 세계인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을 포섭할 수는 없다. 강대국이 되는 것과 선진국이 되는 것 사이에는 황하의 폭 만큼이나 넓은 간격이 존재한다.
문제는 국가의 잘못된 방향설정을 바로잡아 주어야 할 중국의 지식인과 엘리트들 역시 강대국을 향한 정부의 국가주의 프로젝트에 복무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목록은 <쿵푸팬더> 의 눈색깔을 트집잡아 드림웍스에게 소송을 건 '예술가' 부터 중화제국을 찬양하는 '지식인' 까지 참 다양하다. 아마도 이들의 버라이어티 쇼는 아편전쟁 이후 서구에 굴복한 중화제국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강한' 중국이지 '깊은' 중화 문화는 아니다. 후자는 전자를 상상하고 과시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중국이 알리앙스 프랑세즈와 괴테 문화원에 맞서 공자를 내세우는 것은 유교에 대한 경의와 자부심보다는, '세계적인 것' 에 대한 집착이라는 면이 더 클 것이다. 공자는 우연히 그 기준에 부합했을 뿐이다. 성화봉송 당시 티벳 독립 반대를 외치며 발광하던 중국 유학생들의 모습은 유교적 예(禮)와는 거리가 먼, 벌거벗은 중국 패권의 본 모습이다.
동북공정과 백두산 잠식을 일삼는 중국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동북아시아에 일본과 러시아라는 또 다른 강대국들이 있고 미국이라는 균형추가 존재했기에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저질렀던 만행들이 동아시아에서도 자행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누가 아는가? 중국과 미국이 21세기 버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혹시라도 모른다면 꼭 찾아보기 바란다. 이것이 제국의 실체다)이라도 맺을 수 있을지.
중국은 위험하다. 미국과 같은 가식조차 존재하지 않는 노골적인 권력 그 자체이다(물론 이것이 네오콘의 중국 위협론과 궤를 같이 하여 중국을 공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중국과 외교적으로 많은 관련이 있는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야욕에 대한 대응을 분명히 마련하여야 한다. 한국 역시 북한을 내부식민지로 보는 제국주의적 관점을 버려야 함은 당연지사이지만(금강산 관광을 '시혜' 로 보는 2MB 의 오만함을 상기하자).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세계패권을 향한 상징으로 이용하려는 중국과 국내의 여론을 돌리기 위한 용도로 이용하려는 2MB의, 서로 의식하지 못하는 밀월 아닌 밀월은 우려스럽다. 인문을 던져버린 벌거벗은 국가주의자들의 무의식적 상동성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는 날부터, 우석훈이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우려하였던, 문화가 거세된 노골적인 힘들의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을 제어할 수는 없지만 한국을 인문국가로 만들 수는 있으니, 패권적 야욕에 대한 지혜롭고 세련된 대응을 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무더운 여름에 피서삼아 베이징 올림픽을 즐기는 것은 좋다. 올림픽을 본다는 것 자체가 국가주의적 술책에 놀아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2MB가 원하는 불도저 국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신문과 뉴스는 꼬박꼬박 챙겨보자.
시사IN/국제 in2008/08/05 21:20